[야고부] 송이

입력 2011-10-08 07:56:46

한국에도 세계미식가협회 지부가 있다. 회원들이 모두 참석하는 정기 모임에는 당연히 일급 요리를 맛본다. 회원이 되기도 어렵지만, 식사 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남자는 턱시도를, 여자는 이브닝 드레스를 입어야 참석이 허용된다. 혀와 코로 음식을 즐겨야 하며 식사 중 음식에 대한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 소금과 후추도 일절 없다. 식사 중 정치 종교 직업 신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서는 안 된다. 오로지 맛을 음미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진정한 미식가가 되기란 이렇게 어렵다. 요즘 신문'인터넷에 게재된 맛집을 찾아 순례하는 이들이 많지만 격조 높은(?) 미식가의 꿈은 포기하는 게 훨씬 나을 듯하다. 미식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맘때쯤이면 누구나 한 번쯤 떠올리는 음식이 있다. 바로 송이버섯이다. 몇 사람만 모이면 "송이 맛은 봤느냐"는 것이 인사말처럼 나오는 때다. 그렇지만 상당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올해는 송이 흉작이라 가격이 비싸고 귀하기 때문이다. 작년보다 3, 4배 이상 가격이 올랐다고 하니 호주머니 빠듯한 서민들은 맛을 보기조차 어렵다.

지난해 이맘때에는 송이가 아주 흔했다. 기록적인 풍작이어서 고깃집마다 송이 모임으로 붐볐다. 운이 좋으면 아이 팔뚝만 한 송이를 생것으로 뜯어먹으며 향을 음미할 수 있었다. 동네마다 아마추어 약초꾼들이 여럿 있는데 이들의 무용담도 넘쳐났다. 주말에 경북 지역 산을 뒤지면 송이를 한 보따리씩 따왔다고 한다. 웬만한 지식과 경험이 없으면 송이를 찾기 어려운 법인데 작년에는 등산로 인근에서도 심심찮게 발견될 정도로 많았다. 필자의 고교 동창은 술만 한잔 들어가면 군위 인근에서 어른 팔뚝만 한 송이 3개를 채취했던 무용담을 들려주곤 했다. 버섯을 잘 채취하려면 경험이 필수적이지만 긍정적인 마인드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산을 사랑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니다 보면 버섯 밭이 저절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욕심이 앞서면 눈앞의 것만 보기 때문에 송이를 그냥 밟고 지나간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배낭이 적어 능이'송이 버섯을 많이 담아오기 어려웠기에 얼마 전 군용 더블백까지 준비했는데 버섯 구경을 할 수 없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올해는 비 오고 추운 기후 탓에 지난해 생산량의 10%에 불과하다. 없으면 더 먹고 싶은 게 사람의 심리인가 보다. 쌈짓돈이라도 털어 등외품일망정 송이 맛을 봐야겠다.

박병선 동부지역본부장 l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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