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소 앉아 기다리고 있는,/ 정이랑 지음/문학의 전당 펴냄
'몇 년 전 발에게 선물한 검은 구두/ 입술이 벌어져서 바람이 새어든다/ 피곤하면 집에서 푹 쉬라고 타일러도/ 따라나서며 육신과 함께 했던 나날(하략)'-오래된 구두를 위하여-
윤성택 시인은 "정이랑 시인은 현실의 소소한 것까지 묘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복제가 아닌 새로운 창조다. 자신의 경험과 성찰이 덧대어지면서 생에 대한 강한 연민을 이끌게 만든다"고 평했다. 실제로 정 시인은 시적 소재로 가족, 병상, 풍경, 생활, 구두, 돼지국밥, 옷장 등을 동원하는 데 일상, 어디서나 만나는 것들이다.
'나는 남편과 말다툼 끝에 그곳을 나왔다/ 여자란 결혼하고 나면 갈 곳이 없다는 생각으로/ 버스정류소 앉아 나뭇잎 한 장 주워 잎맥을 살핀다/ 손바닥의 손금과 흡사한 길들이 선명하다(하략)' -버스정류소 앉아 기다리고 있는- 중에서
버스정류소는 목적지가 아니다.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타거나, 최종 목적지로 가기 위해 도착하는 점일 뿐이다. 버스가 가는 길은 분명하고, 나뭇잎의 잎맥도 선명하다. 그러나 '결혼한 여자인 나'는 갈 곳을 모른다. 집을 '그곳'으로 명명하고 떠나왔지만, 나는 갈 곳을 찾아낼 수 없다.
서지월 시인은 "정이랑의 시 세계는 전통서정과 토속적인 시어의 정겨움을 바탕으로 리얼한 삶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번 시집에서는 일상성을 소재로 하면서, 여자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뇌가 잘 녹아 있다"고 말한다.
정 시인은 1997년 문학사상에 '꽃씨를 뿌리며'로 등단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불교문학상, 한국 여성문학상을 수상했다. 대산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 수혜시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99쪽, 8천원.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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