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세는 없다'

입력 2011-10-05 10:57:19

대구는 분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서 바람이 잘 불어오지 않는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것도 이런 자연조건 때문이다. 대구사람이 화끈하고 뜨거운 기질을 갖게 된 것도 다 이런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분지는 외부와의 소통에 인색하다. 대한민국이 안철수 바람에 흔들리고 있어도 대구에서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미풍(微風)일 뿐이다.

대구경북이 변화에 둔감한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대구경북사람이 분연히 일어나거나 우리사회의 마지막 보루역할을 해 온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자연환경과 기질에 힘입은 바 크다.

우리는 사소하고 작은 일에 의견을 잘 밝히지 않는다. 식당에 가서 메뉴를 고를 때 우물쭈물하면서 난감해 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대구경북 사람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아무거나'라는 말을 던진다. 꼼꼼하게 무엇을 먹겠다고 따져보거나 자신의 주장을 분명하게 내세우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대충주의로는 제 몫을 찾기 어려운 시대다. 혜성처럼 등장한 안철수 교수 이후 우리 사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즉각 소통하고 즉각 행동한다. 그런 현상을 안철수 신드롬이라고 한다면 범야권 단일후보로 박원순 변호사가 선출된 데서 그 위력을 확인할 수 있다. 정치에 무관심한 20~40대를 하나로 엮어내는 무기가 SNS다. 그들은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을 '늙은' 괴물로 여기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대신 자신들과 소통하는 안철수와 조국 교수에 열광한다. 정치권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렇게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한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는 여권은 물론이고 야권에서도 상대할 만한 적수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른바 차기 대권은 박 전 대표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식의 '박근혜 대세론'이 그것이다. 박 전 대표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미리부터 박 전 대표 주변에 진을 치고 있던 사람들은 '울타리'를 쳐놓고 경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제 대세론은 효력을 다했다. 아직도 대세론의 끝을 부여잡고 지금의 상황은 단지 일시적인 바람일 뿐이라고 치부하면서 철지난 전략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박 전 대표 스스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보수층을 결집하고 선거쟁점을 단순화해서 중도층을 흡수, 여야대결 구도로 선거를 치른다는 전략은 이제 시효가 지났는데도 말이다. 젊은 세대와 진정성을 갖고 소통하지 않으면 주목받을 수 없다. 1997년 대선에 복귀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뉴DJ플랜'을 제시하면서 소통에 나서 정권교체에 성공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5% 남짓한 지지율을 하루아침에 1위로 끌어올린 것은 안철수 교수의 양보였다. 아낌없는 자기 희생으로도 받아들여졌다. 유승민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한 친박계 정치인들의 행태는 박 전 대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눈치를 보고 있는 것처럼 국민들의 눈에 비치고 있다. 친박의 자기희생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박 전 대표의 대선을 위해서는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내가 당선돼야 한다며 지역구 관리에 총력전을 펼치고만 있다. 누구 한 사람 '대선에 올인하겠다'며 불출마를 고려하거나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겠다는 시도가 없다. 초선부터 중진 의원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박 전 대표 이름을 팔아서 다시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것외에는 다른 목표가 없는 것 같다.

정치신인들 역시 기존 정치인들과 다를 바 없다. 세상변화와 나라 안팎의 역학구도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장통을 돌아다니거나 임기를 채우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 준비만 하고 있다.

정치권이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면 민심이 나설 수밖에. 분지적 사고에 젖어 있는 대구경북이 세상과 두려움 없이 맞딱뜨릴 수 있다면 세상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2012년은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걸려 있는 미국 대선은 물론이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도 후진타오 시대를 끝내고 시진핑 주석 시대로 넘어가고 러시아에서도 푸틴이 재등장하는 역사적 전환기다.

이제 대구경북의 변화가 우리 사회를 바꾸고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키는 날도 그리 머지않았다고 믿고 싶다.

서명수(서울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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