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 소도 안 잡아먹었는데 빚더미에

입력 2011-10-04 11:14:14

금융시장이 또 심상치 않다. 2008년에는 미국발로 세게 한 방 먹었는데 이번에는 유럽발로 세계경제가 두름에 엮은 굴비처럼 줄줄이 출렁거린다. '국가 부도 위험'을 거론하는 일부 케이블 뉴스 채널이나, 하루가 다르게 등락을 거듭하는 환율은 IMF의 악몽을 상기시키며 이러다 또 뭔 일 나는 것 아닌가 불안감을 조성시킨다. 이번 금융대란의 진앙인 그리스의 재정 위기는 정부 살림에 적자가 누적되어 발생했다. 집권과 권력 유지를 위해 빚내서 선심성 복지를 남발한 결과이다. 국가 부채가 불감당 경계에 이르기는 이탈리아 스페인도 마찬가지고 하나의 커뮤니티로 묶여 있다 보니 전 유럽이 한동안 혼란의 도가니가 될 것 같다.

정치적 또 경제적으로 전 세계의 형님을 자처하던 미국도 법까지 고쳐가며 국가 부채 한도를 증액하려다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수모를 당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자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부자들이 세금을 더 내겠다고 자원하는가 하면 영국 국방부는 부채 상환을 위한 자구책으로 퇴역 항공모함, 헬리콥터, 방탄 자동차까지 내다 판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선진국, 이머징 국가 할 것 없이 뒷감당할 요량 없이 빚으로 꾸려가다가 화들짝 뜨거운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로 그치면 좋으련만 대한민국의 살림살이도 빚더미 올라앉은 유럽 국가들 못지않게 방만해 보인다. 며칠 전 우리나라 부채 규모가 448조 원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사상 최대의 액수라고 난리다. 그러나 이는 세금을 통해 충당해야 하거나 공적자금 미상환으로 발생한 직접 채무만 집계한 것이며 실제 부채는 2010년 말 기준 1천848조 4천억 원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주장에 귀를 더 기울여야 할 것 같다. 국가 부채 규모는 집계 방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448조 원은 최대한 축소한 액수이며 각종 보증, 공기업 채무 등등 모든 액수를 종합하면 몇 배 더 증가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남의 나라 부채건 우리나라 부채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해결책은 국민들 지갑에서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21세기엔 돈 놓고 돈 먹는 것이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라 여겨지는 전 지구적 시장에서 국경은 별 의미가 없다. 그리스, 이탈리아가 살림을 잘못 살면 그리스 관광 한 번 못 가본 대한민국 소시민의 펀드 잔액이 줄고, 밥상 물가가 오르고, 널뛰는 환율에 기업이 눈물을 흘리게 된다. 우리 정부가 대책 없이 국가 빚을 늘려 가면 국민 일 인당 세금도 더 내야 하고, 국가 신용도라도 추락하게 되면 아일랜드나 그리스와 유사한 전철을 밟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한푼 두푼 적금을 들고 그렇게 모은 목돈으로 생활을 업그레이드시켜 나가던 시절은 50, 60대 분들의 기억에나 남아 있는 향수가 되었다. 금융자본주의가 과연 새로운 경제 모델이 될 수 있는지 심히 의심스러운 가운데 힘들게 번 돈, 내 탓도 아닌 외국발 위기 속에 노년까지 증발하지 않도록 지키는 것도 큰 숙제가 되었다. 이 와중에 국민의 미래를 담보로 잡혀 나랏빚을 늘려가는 관행은 경제적 부담 가중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 걸쳐 도덕적 해이를 유발시킬 가능성이 다분함을 명심해야 한다. 지원이 필요하지 않아 보이는 집단에도 무상으로 이것저것 제공하고, 문제 있는 기업이 쓰러져 가면 공적자금 풀어 무마하고, 일부 자영업이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납세 사각지대에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놔둔다면 복지 혜택은 못 찾아 먹는 사람이 바보고, 공적자금이 있으니 고객이 맡긴 돈 적당히 운영해도 되고, 납세 의무를 다하는 사람은 주변머리 없다는 생각이 팽배하게 된다. 내 주변만 해도 멀쩡한 재산이 있는데 노령 연금 타는 사람이 여럿 있고, 성업 중인 가게를 운영하며 세금은 딸랑 몇만 원 내는 사람도 있다. 집값 폭락하면 공적자금 풀어 막아 줄 거라는 헛된 기대 가진 사람도 있다. 내 주머니 털어갈 빚 내는 데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젊은이들처럼 우리 국민도 길거리로 뛰쳐나갈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서둘러 부채를 줄이고 눈먼 돈 단속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외상이라고 소 잡아먹어서는 안 된다.

양정혜(계명대 교수·광고홍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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