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여름, 대구시민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손수 만들었다. 시민 스스로 육상이라는 비인기 종목 대회를 축제로 승화시켰고 그 축제를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을 만큼' 한껏 즐겼다.
대구스타디움을 연일 가득 채운 관중이 만들어낸 환호와 탄성, 박수갈채와 파도타기는 그 모습 그대로 한 편의 영화였고, 감동 그 자체였다. '경기와 분위기'를 즐기는 관중의 함성과 몸짓 하나하나가 뒤섞여 대구스타디움이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세계가 깜짝 놀랐고, 감동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물론 심지어 우리조차도 전혀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못했던 기적이었다.
축제 분위기가 대회 기간 내내 이어지면서 이번 대회의 주인공이 대회를 준비한 조직위원회도, 세계 최고의 기량을 맘껏 펼친 선수들도 아닌 대구시민으로 바뀌는 '기분 좋은 혁명'을 연출하기도 했다.
축제가 끝난 지 꼭 한 달이 지났다. 아직 그 추억의 '잔상'이 남아 있긴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잊혀가는 것 같아 아쉽다. 도로엔 참가국의 국기가 아직 나부끼고 대형 건물들엔 선수들의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긴 하지만 그때의 감동을 나누고 추억을 곱씹는 분위기는 거의 가라앉았다. 대회 때 보여준 대구시민의 열정을 계속 담아내고 이어갈 수 있는 '뭔가'가 없어 안타깝고 허전하기도 하다.
해마다 열리는 대구국제육상대회나 대구국제마라톤대회가 있긴 하지만 내년 4, 5월이 되어야 하고, '포스트(Post) 2011'을 준비하고 계획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언제', '무엇으로' 연결될지는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대구시민'과 '스포츠', 그리고 '대구스타디움'. 이들 '키워드'를 모두 충족시키면서 곧바로 연결시킬 수 있는 '그 무엇'은 없을까.
있다. 대구시민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지만 분명 이들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이 있다. '대구FC'다. 물론 성적도 신통찮고 내로라하는 스타 플레이어 하나 없지만 '대구시민'이 직접 주주로 참여해 만든 '시민이 주인'인 스포츠 구단이다. 대구시와 지역 기업체들의 외면으로 연간 운영비조차 제대로 변통하지 못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애물단지' 같은 존재로 전락했지만 애초 '대구시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열정으로 만든 대구의 프로축구팀이다.
중앙 정부의 무관심과 비인기 종목이라는 한계, 스타는 고사하고 본선 진출 가능 선수 하나 없는 얇은 선수층, 국민의 무관심, 평창 동계올림픽에조차 밀린 이름뿐인 '세계 3대 빅 스포츠' 등 성공 개최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모든 조건을 갖춘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였지만 대구시민은 보란 듯이 역대 최고 대회로 만들어냈다. '텅 빈 대구스타디움'을 걱정하며 대회 직전까지 전전긍긍하는 등 '뭐 하나 기댈 만한 게' 없었지만 '단 하나' 대구시민의 관심과 열정, 참여로 '기적'을 만들어냈다.
대구FC도 이와 똑 닮았다. 희망도 없고 비관적이다. 그러나 대구시민 한 명 한 명이 눈길 한 번 보내주면 '희망'으로 다시 꽃 필 수 있다. 경기를 잘해서도, 인기 선수가 있어서도 아니다. 대구시민이 만든 국내 최초 시민구단, 대구시민의 애정과 사랑, 관심을 받아야만 힘을 낼 수 있는 시민구단이기 때문이다.
5일 뒤인 이달 9일 대구FC가 대구스타디움으로 돌아온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위해 잠시 떠났던 홈 구장 대구스타디움으로 복귀해 2년 만에 경기를 치른다. 대구FC도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날 경기를 '대구시민 축제의 날'로 준비하고 있다. 육상선수권대회의 열기와 축제 분위기를 이어가고, 결코 '무기력하고 괴팍하지 않은' 대구시민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0월 9일, 대구FC의 '대구스타디움 복귀전'을 시작으로, 대구스타디움이 대구FC를 응원하러 온 대구시민으로 차고 넘치는 기분 좋은 그림을 그려본다.
이호준(스포츠레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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