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반년이 지났다. 내가 사는 센다이의 거리는 급속히 복구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잇따른 여진과 태풍으로 자연의 무서움을 실감하게 되었다. 게다가 인접한 후쿠시마현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로 방사성 물질에 대한 공포도 크다. 수돗물, 야채, 고기, 생선 등을 먹는 것이 겁이 난다. 정부는 안전하다고 발표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불안을 떨칠 수 없다. 일상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새삼 통감하고 있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후쿠시마 주민일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대피 명령이 내려 다른 지방으로 이동을 강요받은 후쿠시마 주민들은 앞으로 몇 년 또는 몇십 년간 피난 생활을 해야 할지 모른다. 지진과 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 그들은 그곳에서 평온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직장, 학교, 가정을 잃어버리고 이재민으로서 사회적 약자 취급을 받고 있다.
우리 집 근처에는 주말에 작은 시장이 열린다. 야채와 과일, 빵 등 동북 지방에서 생산한 물건을 생산자가 직접 팔러온다. 지난 주말 시장에서는 막 수확한 신선한 복숭아가 많이 팔리고 있었다. 나는 잘 익은 복숭아를 몇 개 사려고 했으나, 봉지에 '후쿠시마산'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내민 손을 거둬들였다. 혹시 방사성 물질이 묻어 있는 것은 아닐까. 웃으면서 복숭아를 팔고 있는 아저씨가 갑자기 나쁜 사람으로 보였다.
후쿠시마 주민 일부는 피난처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 '접근하면 방사능에 감염된다'는 근거 없는 소문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 분별없는 사람들이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 마치 자신이 상전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복숭아를 팔러 온 아저씨를 나쁜 사람 취급한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이전과 다름 없이 정성 들여 농작물을 키워 정부가 제시한 방사선 양의 기준보다 더 안전한 것만을 출하하고 있다. 바뀐 것은 '독극물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의심하는 우리의 의식이다.
이제 방사능 피해는 후쿠시마현만이 아니다. 동북 지방이나 관동 지방에서 수확한 농축산물, 음료수 등에도 방사성 물질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의심을 받는다. 그런 가운데 한 지방 방송국이 심각한 방송 사고를 일으켰다. 시청자 선물 코너에서 '이와테현 생산 쌀 10㎏' 당첨자 3명의 이름을 '수상한 쌀, 세슘 씨께'로 표시한 것이다. '세슘'은 이번 원전 사고로 대기 중에 방출된 방사성 물질이다. 리허설의 임시 자막이 조작 실수로 그대로 화면에 나와 버렸다고 하지만, 피해 지역을 비하하는 자막이 리허설에서 사용되었다는 것 자체가 용서받기 어렵다. 텔레비전 방송국 직원의 '악의적인 장난'이 지금도 큰 파문을 낳고 있다.
최근 벨기에에서 열린 축구 경기에서 관중들이 일본인 골키퍼 가와시마에게 '후쿠시마'라는 야유를 보냈다. 상대팀의 서포터스가 가와시마 선수를 자극하기 위해 원전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를 연호한 것이다. "다른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후쿠시마'는 참을 수 없다"는 가와시마의 항의로 경기가 일시 중단됐다. 축구에서 상대를 자극하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로 가와시마의 행동에 대해서는 찬반이 있다. 하지만 이국에서의 그의 외로운 항의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는 고통과 슬픔을 참지만 않고 목소리를 높여 당당하게 맞서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사실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지금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슬프게도 이번 사고가 세계 역사에서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피해를 파악하기 위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항상 방사능과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일본에서는 피해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에서 앞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 일본인이 인간으로서의 윤리와 품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이 위기를 무사히 극복할 수 있도록 이웃 나라에서도 따뜻하게 지켜봐 주면 좋겠다.
(요코야마 유카·일본 도호쿠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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