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세계육상대회 출전한 고교생…예선탈락 좌절 겪었지만 세계최고 무대서
"여자 1,600m 계주 1번 주자로 출발선에 섰을 때 뒤처지더라도 어느 정도는 따라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머릿속 그림보다 훨씬 차이가 많이 나 놀랐습니다. 생각과 다르더라고요."(우유진)
"솔직히 좌절했습니다. 실력 차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시아권 대회에선 큰 차이가 안 났는데'''. 거리 차가 너무 나다 보니 다른 경기를 하고 있는 줄 알았을 정도입니다."(이선애)
이달 4일 끝난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고교생 신분으로 출전해 주목받은 이선애(17'대구체고 2년)와 우유진(18'경북체고 3년)은 "대회가 끝난 지 보름이 더 지났지만 아직도 대구스타디움 트랙을 달리는 꿈을 꾼다"고 했다.
이선애와 우유진은 대회 여자 400m 계주와 1,600m 계주에 각각 출전해 예선 탈락이라는 쓴맛을 보며 적잖이 실망했다. 예선 통과까진 아니더라도 한국 기록을 깰 것이라 자신했는데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실망했지만 좌절은 없다
그러나 좌절만 한 것은 아니다. 세계의 벽에 부딪치면서 몸속 깊은 속에서 꿈틀대는 '뭔가'를 찾아냈다. 이선애는 "세계 최고의 육상 대회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직접 함께 뛰는 경험을 통해 심리적인 거리를 많이 줄였다"며 "세계의 벽을 넘는 것은 힘들지만 한국 기록 경신이나 아시아 무대 입상은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봤다"고 했다.
우유진도 "올해 5월 세계적인 육상 스타 데이비드 올리버와 앨리슨 펠릭스가 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되고 신기했다"며 "그러나 이번 대회를 통해 이들도 우리와 똑같이 힘들어하는 것을 봤고, '해볼 만할' 정도는 아니지만 다음엔 좀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선애와 우유진은 이번 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고교생 3명 중의 2명으로, 한국 육상을 짊어지고 나갈 차세대 주자여서 이들이 쌓은 경험과 자신감은 곧바로 한국 육상의 발전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선애는 지난해 8월 자신의 주종목인 여자 100m에서 11초76, 우유진은 올 4월 여자 400m에서 54초78의 개인 최고 기록을 작성, 고등부 '1인자'는 물론 일반부를 통틀어서도 1~3위를 다투는 한국 육상의 희망이다.
이들은 한국 육상이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선 과학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선애는 "일본의 경우 우리와 신체 조건이 비슷한데도 육상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 시스템 덕분이다. 한국 여자부에도 과학적인 시스템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남자 계주팀은 8개월 동안 합숙 등 단체 훈련을 했는데 여자부는 한 달도 못해 아쉬웠다"며 "계주는 함께 훈련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만큼 합동 훈련과 함께 국제대회에서 외국 선수랑 더 많이 뛸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육상의 발전을 위해선 국민의 관심과 관중의 열광적인 응원이 절대적이란 말도 빼놓지 않았다.
우유진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건 관중의 응원이다. 꽉 찬 관중석과 뜨거운 응원에 큰 힘을 얻었다. 더 열심히 뛸 수 있었고, 끝까지 포기할 수도 없었다"며 "지금까지 국내 대회 경기장에는 선수와 코치, 가족만 있다. 앞으로도 육상에 관심을 갖고 많이 응원해 주시면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와 인기 스포츠가 되고 세계적인 스타도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라고 못할 리가 있나
지도자들 역시 이번 대구 육상선수권대회가 한국 육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이종우 경북체고 육상 단거리 감독은 "이번 대회를 통해 선수들이 좌절을 맛보긴 했지만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고 '이렇게 해선 안 되겠다'는 반성과 평가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러한 좌절과 경험, 반성 등을 통해야만 발전할 수 있다"고 했다.
이선애, 우유진 등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20대 안팎이란 점도 희망적이다. 이종우 감독은 "앞으로 3, 4년 내에 틀림없이 육상 스타가 탄생할 것이다"며 "특히 어린 선수들이 이런 큰 대회에 뛸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큰 경험이고 큰 도움"이라고 했다.
김수현 대구체고 육상 코치는 "이선애는 반응속도 등 순발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우유진은 고관절 등 동적 유연성이 뛰어나다"며 "이들이 머지않아 아시아권 정상에 오르고 세계 대회에서 결선 진출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도자들은 또 한국 육상이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무대에 서기 위해선 초교 때부터 유망주를 발굴해 육성하는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종우 감독은 "소년체전 선발전 등을 보면 선수층도 두텁고 좋은 선수도 많은데 우승한 선수조차도 육상을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초교 때 좋은 선수를 발굴해 중'고교 등으로 연결하는 초교 교사에게 승진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현 코치는 "일본, 중국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 초교 때부터 정책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초교에서 좋은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지 않으면 세계적인 선수를 양성할 수가 없다. 초교 육상 교사에게 획기적인 혜택을 주는 게 최고의 해법"이라고 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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