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영화 '카운트다운'의 여자 주인공 전도연

입력 2011-09-29 13:59:16

이번엔 어떤 인물…그녀 연기는 '천의 얼굴'

팜파탈과 순박함이 가득한 여인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변신을 거듭한다. 이름만 대면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자동으로 따라오는 그녀. 이제 한국에서만 통하는 이름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 배우가 됐다.

배우 전도연(38)만큼 대중에 각인된 배우가 또 있을까. '하녀' '멋진 하루' '밀양' '너는 내 운명'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 아직도 전작들에서 연기한 인물들을 얘기할 때면 그 감정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녀의 연기에 대한 애착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각 인물을 연기하며 황홀하고 즐거웠던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전도연은 영화 '카운트다운'(감독 허종호)에서는 자칭 '미스 춘향'이라 속이며 정'재계의 실력자들을 주무르는 미모의 사기전과범 '차하연'을 연기했다. 하연은 10일 내에 간이식 수술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채권추심원 태건호(정재영)를 만난다. 몇 해 전, 건호의 아들로부터 심장을 기증받은 그녀는 출소하면 간을 이식해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그녀의 목적은 따로 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건호의 시선을 따라간다. 극적 드라마도 건호 중심이다. 하지만 전도연 주변 사건들 역시 만만치 않다. 자신을 감옥에 들어가게 한 조명석(이경영)과 17세에 낳고 버린 딸 현지(민)와의 사연 등은 건호의 이야기와 함께 극을 조화롭게 만들어 나간다.

"드라마 주 역할은 태건호로 분한 정재영 씨 몫이었고, 제가 연기한 하연은 건호를 사건에 휘말리게 하는 장치적인 역할이었어요. 단지 저는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것보다 차하연이라는 여자에 포인트를 두고 연기를 했죠. 화려한 외모에, 사기도 치고 기가 세 보이는 것 외에도 어떤 빈 구석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극 중 딸과의 관계처럼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하연이 여리고 따뜻한 여자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사실 하연은 편한 마음으로 택한 인물이었다. "가볍게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할 게 많더라"는 때늦은(?) 후회. 찬바람이 불던 날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다른 배우들과는 달리 실크 소재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안에 다른 옷을 입지 못했다. 전도연은 "너무너무 추웠다"고 회상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고 카멜레온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외적으로 돋보여야 해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시골 장터에서 대역 없이 직접 소화한 자동차 추격 신도 걱정이 앞섰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운전대를 잡아본 지 4년이 넘었다"는 정재영의 말에 걱정을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운전을 정말 잘하시더라"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전도연은 2007년 영화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따내며 '칸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었지만 이후 생활은 별다를 바가 없었다. '칸의 여왕'에게 함께 일해 보자며 줄을 설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칸의 여왕'이라는 게 나는 부담스럽지 않은데 오히려 주위에서 부담스러워하고 조심스러워 한다"고 아쉬워했다. "사람들은 제가 한국 작품뿐만 아니라 외국영화 시나리오까지 쌓아두고 볼 것이라 생각하던데 안타깝게도 정말 아니에요. 칸 수상은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인지도를 높여주기는 했지만 제 현실이 여왕처럼 변한 것은 아닙니다."(웃음)

작품성 있는 영화만 선택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현실적인 여건상 많은 작품을 할 순 없었다. 2008년 영화 '멋진 하루'는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촬영이 지연되기도 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배우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역할이 폭넓지 않은 것 같아요. 감독님들이 '요즘 뭐하니? 작품하자'고 하는데 시나리오를 주실 것처럼 하고는 주지 않으시더라고요."(웃음)

전도연은 한 가정을 꾸리기 전, 결혼을 하면 배우 생활을 그만하겠다고 했지만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팬들에게도 그렇지만 자신에게도 다행스러운 일. 결혼을 하고 나서 더 일이 소중해졌기 때문. 일을 할 때가 전도연이 제일 그녀답게 보이는 때란다. 그녀는 "일이 끝나고 나면 느껴지는 공허함이 결혼을 하면 메워질 줄 알았다"며 "그때 당연히 결혼이 모든 답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철없는 생각을 했다"고 웃었다.

정재영과는 2002년 '피도 눈물도 없이' 이후 9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췄다. 어땠을까. "그때는 저도 신인이나 다름없었죠. 상대방을 보기에 여유가 없어 촬영만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이후 재영 씨를 사석에서 몇 번 보고, 작품들을 보며 '좋은 배우로 성장하고 있구나' 했죠.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건 정재영이라는 사람이 건호처럼 진지하고 어려운 줄 알았는데 유머러스하고 재밌더라고요. 현장 촬영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전도연은 정재영이 유머러스하고 재미있는 사람임을 알게 됐지만 "함께 멜로 장르를 하자는 제의가 들어온다면 같이는 못 할 것 같다"며 손사래 친다. "멜로는 신비감이 있어야 하는데 신비감이 없는 배우이자 남자"라며 웃어넘긴다. 정재영도 이미 자신의 이런 마음을 알고 있다며 또 한 번 크게 웃는다.

드라마 '별을 쏘다'에서 '구성태'를 부르는 전도연 특유의 목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드라마 출연 의향을 물었다. 사극보다는 로맨틱 드라마에 관심이 높다. "마지막일지 모르는데 할 수만 있다면 밝고 로맨틱한 드라마를 하고 싶어요. 드라마 대본 5개가 들어왔는데 3개가 사극이었던 것 같아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촬영할 때 대사 톤이 너무 어려워 힘들었어요. 드라마를 즐기고 싶지 공부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웃음)

'칸의 여왕'의 눈길을 사로잡은 후배는 누군지도 꼽아달라고 했다. "개성 넘치고 연기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굳이 꼽자면 공효진 씨와 정유미 씨요. 공효진은 보고 싶은 모습이 많은 배우로 다양한 작품에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정유미는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 연기를 너무 잘해 놀랐어요. 더 큰 뭔가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어떤 선택의 일부라고 생각했다는 전도연. 하지만 배우로 살면서 연기는 절대적인 일이 됐고, 선택의 여지도 없는 전부가 됐다. 그녀가 각 배역에서 아무리 최선을 다한 듯이 보여도 자신에게는 아쉽고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자꾸 부족한 게 보이니깐 노력을 하는 것 같아요. '어떤 것에 만족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앞으로도 열심히 할 거예요."(웃음)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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