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選大 4학년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더라"…4년차 레임덕 '깡통 국감'  

입력 2011-09-24 07:03:28

피감기관들도 '다시 볼 일 없는 사람'엔 막말

이번 국회도 어김없이 여야 의원들의 호통소리와 피감기관의 진땀 흘리기가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다면, 결론부터 말해 오산이다. 국회가 국정(國政)의 공정집행 여부를 감시'감독하는 권한인 국정감사는 18대 국회 들어 마지막 해의 불꽃을 피우고 있다. 국회도 '레임덕 현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피감기관의 아킬레스건을 잡아채 언론의 주목을 받겠다는 '한 건 주의'는 없다. 오히려 피감기관이 "할 말은 하겠다"고 대들고, 서로 목청을 높이면서 '국정감사 희화화(戱畵化)'가 극에 달한다.

◆휑한 국감장 의원님들은…

정치권의 말을 빌리자면 "국정감사에서 가장 힘을 발휘하는 주인공은 초선 1, 2년차"다. 지역 주민의 선택을 받아 의기양양하게 국회에 입성한 이들은 정기국회 첫 국정감사 때 '한 방'을 발휘하곤 한다. 2008년 국감 때 '쌀 직불금 수령 문제'로 매머드급 이슈를 부각시킨 의원도 '신인'이었다. 하지만 이들 초선 의원이 4년차쯤 되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깨닫고 "국감 아무리 해도 바뀌는 것이 없더라"는 것을 깨닫는단다. 이쯤 되면 차기 총선에 더 신경이 쓰여 바닥 민심 다지기에 나선다. 국감장이 텅 비는 이유다. 재선, 3선 등 중진 의원들은 국감에서 일찌감치 거리를 둔다.

4년쯤 되면 의원 보좌진도 소위 "밑천이 달린다"고 말한다. 해마다 같은 자료를 피감기관에 요구하는 것도 부끄럽지만, 캐낼 수 있는 '국감 거리'도 바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난해 국감자료에서 올해 수치만 덧붙여 보도자료를 뿌리고, 지지난해 지적한 내용에다 현재 상황을 엮어 새로운 것처럼 내놓는가 하면, 책자로 포장만 그럴듯하게 만들어 뿌리는 행태가 쏟아진다. '정책 국감'이 '속 빈 강정'이 되는 것이 4년 주기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드는 피감기관

피감기관으로서는 이번 국감을 끝으로 현역 의원들을 만날 일이 없다고 여긴다. 선거에서 살아 돌아올 의원들이 많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각당이 앞다퉈 '세대교체' '인물영입' 등을 주장하는 마당이니 누가 차기 총선에 당선되고 낙마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선지 4년차 국감 때 피감기관이 대드는(?) 일이 가장 많이 벌어진다.

이달 20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장에서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민주당 이용섭 의원이 "그리스, 이탈리아의 재정위기 원인이 복지지출 증가 때문이라는데 스웨덴, 덴마크처럼 복지가 더 잘 발달된 나라는 재정위기가 오지 않는다"고 하자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라고 반박했다. 설전이 이어지다 이 의원이 "그건 말장난이다"고 지적하자, 박 장관은 "국무위원에게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장관이 까칠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어 22일 행정안전위의 경찰청 국감장에서는 조현오 경찰청장이 고함을 쳤다.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KBS의 국회 민주당 대표실 도청사건을 지적하면서 "유달리 정권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자 조 청장은 "결코 동의하지 못하겠다"고 맞받았고, 이어 백 의원이 "(조 청장이) 정치판에 기웃댄다는 말이 경찰에 파다한 것을 아느냐"고 하자 "모욕적인 발언을 삼가달라. 정치권에 기웃거렸다는 증거가 있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앞서 19일 교육과학기술부 국감장에서는 이주호 교과부 장관의 19대 총선 출마 여부를 놓고 민주당 안민석 의원 사이에서 이 장관과 신경전이 벌어졌다. 안 의원이 이 장관에게 "지금 교과부 직원들 사이에서 이 장관이 19대 총선에 출마할지 안 할지, 출마한다면 장관직 사퇴 시점은 언제인지를 놓고 내기를 하느라 업무집중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아느냐"고 묻자, 이 장관은 "현재는 출마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고, 출마냐 불출마냐를 놓고 아이들 말장난하듯 주고받았다. 안 의원은 "출마하겠다는 의지를 오늘 분명히 밝힌 것으로 보겠다"며 화제를 바꾸자 이 장관은 끝까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국감장이 싸늘해졌다.

◆4년차 국감의 촌극

비단 피감기관의 문제만은 아니다. 반말에다 원색적인 비난도 주고받는다. 19일에는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가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반말로 질의하다 파문이 일자 공식 사과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정 전 대표가 이날 외교통상부 국감에서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가 총선 한 달 전에 열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핵안보정상회의 일정을) 거의 1년 전에 정했다는 얘긴데 그걸 왜 국회의원 법정선거 일정에 끼워 넣은 거야? 도대체 그게 상식에 맞는 얘기야?"라고 반말로 물었고, 김 장관이 답하자 "그게 무슨 궤변이야? 장관 같은 사람이 장관하니까 외교부가 문제가 없이 잘 되나?"라고 비난했다. 일부 언론이 태도를 문제삼자 정 전 대표는 급히 사과했다.

같은 날 2박 3일 일정으로 중국 방문길에 오르려던 박선규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인천공항으로 향하던 중 국감장으로 돌아왔다. 국감 직전 취임한 신임 장관을 보좌했어야 한다며 국회에서 박 차관 출석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22일 교육과학기술위는 23일 곽노현 교육감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 대한 지적을 예상한 민주당 측이 서울시교육청 국감을 비토하면서 파행을 겪었다.

일각에서는 매년 이맘때 빚어지는 촌극이지만 올해처럼 무성의하고 유치한 적은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감자료 준비로 밤을 밝혀야 할 의원실 가운데 내년 선거에 대비, 지역구 관리를 위해 빈 곳이 많다.

낮에는 국감장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지역구를 도는 의원들의 모습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국감보다는 내년 총선이 더 신경쓰이기 때문이다. 질의 순서를 앞으로 당겨달라고 상임위 간사에게 부탁하는 의원들은 십중팔구 지역구 행사를 챙기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아예 서면질의로 대신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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