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백일장] 누부야! 보고 싶다/ 인생무상 / 와룡산 구절초

입력 2011-09-23 07:55:08

(사진:1967년 겨울 찍은 가족 사진. 누님은 우측)
(사진:1967년 겨울 찍은 가족 사진. 누님은 우측)

♥편지 #누부야! 보고 싶다

사랑하는 누님, 누님을 경황 없이 떠나보낸 지 벌써 스무 날이 넘어갑니다. 돌아오시지 못하는 길을 가신 누님을 향해서 조용히 불러봅니다. "누부야! 보고 싶다!" 누님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어디 나 혼자겠습니까? 나는 막내로 누구보다도 누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에 이른 아침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니 꿈속에서도 누님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갑작스런 이별은 지난 4일 찾아왔습니다. 내가 미국 출장 중이던 1일 누님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들었습니다. "추석 때 보자. 건강하게 지내다 오너라. 사랑한다. 동생아." '동생, 이 못난 누나가 사랑한다. 늘 건강하고, 다음에는 큰 가방에 넣어서 누나도 같이 가자'고 보내신 문자를 오늘도 보고 또 봅니다.

사람들은 누님께서는 하늘나라에서 더 하실 일이 많으셔서 빨리 가셨을 것이라고 위로를 하지만 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나이 50세가 넘었지만 아직도 세상을 많이 모르는 동생은 누님과 이승에서 더 같이 더 오래 있고 싶은데 말입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5월 5일 단옷날. 누님은 두메산골이지만 인심 좋기로 소문난 의성군 춘산면 금오리에서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비록 전쟁 중에 태어났으나 새 생명은 전쟁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던 모든 사람들에게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버님의 사업 실패와 지병은 누님의 소녀 시절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두 형님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시골에서 대구로 오셔서 가사일 돕기, 조립공 등으로 일하시면서 동생들의 학업과 뒷바라지만을 위해서 힘썼습니다. 가난 탈출이 제일이었던 그 시절, 제일 큰 희생을 하신 누님이셨습니다. 누님은 내당동, 대봉동, 방천시장 부근을 거쳐서 결혼 후 한동안 사셨던 신천동에 이르기까지 동생이 학업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오고 짝을 만나서 가정을 이룰 때까지 아니 지금까지도 동생 사랑은 50년 넘게 계속 되었습니다. 누님의 희생이 있었기에 두 분의 형님께서는 각각 고위공무원과 방사선 전문가로 그리고 나는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보고 싶은 내 누님, 허위자! 누님의 이름을 또 불러봅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누님께서 갑자기 그리고 그렇게 끔직한 사고로 가신 줄 모르고 계시거나 충격 속에 지내고 있답니다. 어제는 누님의 단짝이셨던 태조 누님과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내가 대구에 내려가면 모시고 누님이 계시는 곳에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누님을 대신해서 저녁도 대접할 생각입니다. 누님과 같이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누님 생전에 더 잘 해드리지 못한 점 용서를 구합니다. 누님이 많이 보고 싶을 것입니다. 고생이 없는 하늘나라에서 부모님과 함께 편히 쉬시고 밤하늘에 별이 되어서 늘 저희들을 지켜보시고 대기 중의 산소가 되고 햇살이 되어서 늘 우리 곁에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자주 병원에 가셔야 하는 자형, 아직 짝을 찾지 못한 상훈이, 명훈이 내외, 수지 걱정하시지 말고 부디 편히 쉬시길 기도합니다. 나와 형님, 형수님, 조카들은 누님께 못다 한 몫까지 같이 나눌 것입니다. 남아 있는 우리들이 더욱더 열심히 사랑하고 도우면서 살겠습니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천 번을 보아도 미더운 당신은 사랑입니다.

"누부야! 사랑합니다."

2011년 9월 22일 막내 동생 용환 드림

허용환(서울 용산구 이촌2동)

♥시 #1-인생무상

남을 탓하지 마라

그도

내게서 비롯되었거늘!

남이 나이고

내가 남이지 않느냐!

이 세상 하직하면

너도 나도

한 움큼의 바람으로

한 잔의 술로

흩어지리니

인생은 무상이다.

덧없는 것이다.

그때가 어느 쯤인지

우리는 모두

경건하게

맞이해야 한다.

구수교 다리 아래

백로 한 마리도

긴 목을 두세 번 접고서

발아래

물속을 들여다본다.

무심한 세월에 목말랐어도

그는 물속에 비치는

이끼 낀 제 그림자에!

소스라쳐, 물 한 모금 적시지 않고,

홀연히

비상의 나래를 편다.

무상의 세상으로….

이수자(대구 북구 구암동)

♥시 #2-와룡산 구절초

와룡산 등산로 옆에

저 혼자 살포시 핀 풀꽃 한 송이

눈길이 덜 타는 작은 꽃에도

귀가 있나 보다

이따금씩 벌레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는 것을 보면

까마득히 높은 하늘이

언제는 또 나지막이 내려와 있다.

한낮에는 허리를 흔들어 주는

바람과 얘기하다 어느새 혼자 서있네

맑고 고상한 너는

진정 구월의 화초구나

허이주(대구 달서구 용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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