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12월, 초겨울 날씨가 매서웠다. 이가 절로 부딪치는 혹한 날씨였지만 삼성 라이온즈의 신인테스트는 강행됐고 40명 중 한 명만 뽑혔다. 그가 투수 오봉옥이었다.
제주 출신으로 더 유명해진 오봉옥은 고교 때 야구를 시작해 성공한 국내 유일한 선수로, 그날 3년을 쉬고도 영하 10℃가 넘는 날씨 속에 139㎞의 직구를 던진 천부적인 능력을 선보였다.
타고난 골격이 일반인보다 월등한데다 어린 시절 제주 한림의 바닷가에서 수영으로 다져진 몸매에서 나오는 힘과 체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고교 1년 때 포철공고로 전학 온 오봉옥은 야구부 친구를 졸라 감독 앞에서 즉석으로 테스트를 받았는데, 그때 100m 가까이 공을 던져 모두를 놀라게 했다.
발로만 저어서도 하루 종일 바다에 떠 있을 수 있는 체력이었으니 아무리 힘든 훈련에도 지치는 법이 없었고 결국 늦게 야구를 시작했지만 빠르게 성장해 고교 3년 때 포항에서는 최고의 투수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술이 화근이었다.
자존심이 강했던 오봉옥은 영남대로 진학했지만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선수들에게 선배 대접하기가 어려웠고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자 극기야 한 차례 소동을 일으키고 자퇴하고 말았다.
야구를 그만두자 입대가 다가왔고 휴가 때면 늘 포항에서 야구 동료들과 보냈다.
제대 후 포철공고 OB전에 참가한 최해명 선배로부터 테스트 참가를 권유받은 오봉옥은 또 한 번의 테스트를 극적으로 통과하면서 야구인생을 부활시켰다.
입단 첫해에 패전처리로 나선 구원등판이 역전승으로 이어지면서 13승 전승으로 승률왕에 올라 두각을 나타냈고 '돌 직구'의 숨어있던 자질도 서서히 드러나는 듯했다.
그러나 술을 자제하지 못했다. 밤새워 마셔도 아침에 곧바로 연습에 합류할 정도로 체력이 좋은 것이 문제였다.
사생활 문제로 2군으로 떨어지면서 기회도 시름시름 사라져갔고 4년 만에 삼성과의 인연을 끝냈다.
방출된 이후에는 음주사고로 큰 부상을 당했지만 쌍방울에서 6승을 거두면서 구위를 되찾는 듯하다 기아를 거쳐 2006년 한화에서 은퇴를 하고 지금은 제주 제일중학교 감독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타고난 천부적인 자질을 갖고 있었지만 술을 너무 가까이하면서 스타가 되지 못했던 프로야구 사상 가장 아까운 선수가 바로 오봉옥이었다.
아마도 고교 때 야구를 시작해 프로에 입문하는 선수가 다시는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프로의식이 강하지 못해 많은 선수들이 술을 가까이했고 대부분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많았다.
어렵게 삼성으로 돌아와 삼성맨으로 은퇴할 것 같았던 장효조도 힘든 시절에는 막걸리를 많이 마셨다고 한다.
프로야구 팬들은 시대를 빛낸 스타들과 오랫동안 함께하길 바란다. 스타를 보낸 아쉬움을 오봉옥을 떠올리며 달래본다.
최종문 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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