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가을과 대학 입시

입력 2011-09-19 10:56:45

가을을 흔히 천고마비(天高馬肥) 혹은 추고마비(秋高馬肥)의 계절이라고 한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이다. 두보의 조부인 두심언이 변방에 근무하는 친구가 빨리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쓴 '증 소미도'(贈 蘇味道)가 출처다. 두심언은 이 시에서 '雲淨妖星落 秋高塞馬肥'(구름은 깨끗한데 요사스러운 별이 떨어지고, 가을 하늘이 높으니 변방의 말이 살찐다)라고 했다. 아름다운 비유로 낭만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그 뒤에는 걱정과 경계가 숨어 있다. 늘 중국 변방을 위협한 흉노족 때문이다. 가을로 들어서는 음력 8월쯤이면 말들이 살찌면서 유목 기마족인 흉노가 서서히 준동하는 시기여서 이를 경계한 것이다.

'천고마비'라는 말 뒤에 걱정의 뜻이 있듯, 가을의 수험생 가정에도 걱정이 가득하다. 대학 입시 때문이다. 추석을 전후해 마감한 수시 모집에서 수도권 33개 대학의 평균 경쟁률이 33.28대 1로 지난해 26.55대 1을 훌쩍 넘었다. 수백 대 1이 넘는 과도 수두룩하다. 수도권 33개 대학의 응시 인원이 103만 7천836명으로 올 수능 시험 응시 인원 69만 3천634명보다 50%가량 많다. 국내 대학 전체를 합하면 수능 응시 인원의 몇 배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수시 전형의 비중이 높아지고, 미등록 충원도 정시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비 합격자에서 뽑아 합격이 쉬워질 것을 기대한 수험생의 지원이 몰렸기 때문이다.

이 덕에 살판난 곳은 대학이다. 평균 7만 원인 전형료 장사로 톡톡한 재미를 본다. 대학은 지난해 수시 전형료로 2천300억 원을 챙겼다. 일부 유명 사립대는 올해 지원자가 수만 명 늘어, 지난해보다 10억 원 이상의 수익을 더 올렸다. 문제 출제나 고사장 확보에 쓰이는 비용을 참작하더라도 원서 하나 내는 데 이렇게 비쌀 이유가 없다. 하지만 지난해에도 비싼 전형료에 대한 비난이 높았으나, 전형료를 내린 대학은 없다.

수험생 가정의 가을은 천고마비의 아름다운 계절이 아니다. '오르지 않는 것은 월급과 성적뿐'이라는 광고 문구가 아니더라도 높은 물가와 수험생 뒷바라지로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이를 막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정부가 오히려 더 치열한 전쟁터로 만들어 놓았으니 하소연할 곳도 없다. '고통은 커지고, 대학만 살찌는'(苦高大肥) 계절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랄 뿐이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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