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세계육상 성공, 고향에 대한 마음의 빚 털었죠"

입력 2011-09-17 07:58:00

'어메이징 문' 문동후 대구육상조직위 부위원장

'어메이징 문'(The Amazing Mr. Moon). 이달 4일 폐막한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성공으로 이끈 대회 조직위원회 문동후(62'사진) 부위원장이 국제 스포츠계에서 불리는 애칭이다. 지난해 빌 베일리(Bill Bailey'호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집행이사가 아터 타카치(Artur Takac'구 유고슬라비아)의 저서인 '올림픽 60년사'(Sixty Olympic Years)에서 '어메이징 문'이라는 제목이 붙은 챕터를 찾아낸 뒤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고문역과 경기국장을 역임하는 등 IOC 대회 운영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았던 타카치가 1998년 발간한 이 책에는 '어메이징 문'이라는 코너를 통해 문 부위원장을 소개하고 있다. 타카치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문 부위원장(당시 조직위 경기국장)이 일하는 것을 보고 놀라 개인 자서전에 문 부위원장을 등장시켰다는 것.

지난해 카타르 도하 집행이사회 때 문 부위원장이 타카치의 책에 소개됐다는 얘기가 알려지자 참석자들이 모두 박수갈채를 보내며 이에 동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번 대구 대회는 '어메이징 문'이 사무총장으로 준비하는 대회인 만큼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다.

이들의 장담처럼 2011 대구 대회는 성공적으로 개최됐고, 그 중심에는 역시 문동후 부위원장이 있었다. 그는 조직위 사무총장직을 겸하면서 대회 준비 및 개최 관련 모든 업무를 총괄하고 앞에서 진두지휘했다. 영어에 능통한 그는 IAAF 집행이사회 등 거의 모든 회의와 주요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대회 개최와 관련된 각종 크고 작은 사항들을 조율했고, 조직위 내부에서도 '악역'을 자처하면서까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겼다. 대구스타디움에 몬도트랙과 전광판을 설치할 때 예상가의 절반 이하로 낙찰받은 것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2007년 9월 김범일 대구시장으로부터 사무총장 및 부위원장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망설임도 없이 한달음에 내려왔다. 당시 다른 몇 곳에서 비슷한 제의를 받은 상태였지만 '고향'으로 가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에 흔들림이 없었다. 김천에서 태어나 6'25 때 대구로 내려온 뒤 동덕초-사대부중-경북고를 다니며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면서 대구를 떠났고, 만 40년 만에 다시 고향을 찾게 됐다.

문 부위원장은 "30여 년 공무원으로 국가를 위해 살았지만 고향을 위해 한 일은 없어 늘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쁘다"며 "무엇보다 이번 대회를 통해 대구시민의 저력을 확인했고 감동을 받았다. 이번 대회는 직접 분위기를 만들고 그 분위기 속에서 직접 즐기는 문화를 만든 대구시민의 승리"라고 했다.

1972년 행정고시를 통해 중앙 관료로서의 공직 생활을 시작한 그는 총무처 조직국장과 청와대 의전 및 행정비서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는데 특히 88 서울올림픽 경기국장과 2002 한일월드컵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성공적으로 대회를 개최해 국제 스포츠대회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았다. 이번 세계육상선수권까지 직접 총괄하면서 국내 최초로 세계 3대 스포츠 대회를 모두 치른 '트리플 크라운'의 영광을 누리게 됐다.

그는 "88 올림픽이나 2002 월드컵 때보다 훨씬 가치 있고 가슴 벅찬 대회"라며 "무엇보다 육상 불모지, 특히 각종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 도시에서 모든 악조건을 딛고 역대 최고의 대회를 만든 것은 대구시민이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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