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출판의 계절…그들은 왜 책을 내는가 '불편한 진실'

입력 2011-09-10 08:19:10

누가 믿나? 정치철학 홍보…알고보면! 후원금 모으기

국회는 지금 책의 홍수다. 자고 일어나면 출판을 알리는 포스터가 국회 곳곳에 붙는다. 이번 10, 11월에는 국회 의원회관 대'소회의실을 빌리기가 어렵다. 출판기념회를 열기에 안성맞춤인 이 공간은 이미 매진이다. 이달 중에만 18건이 열린다. 의원들이 요즘에 낸 책을 한번 보자.

◆책 내는 금배지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의 '뚜벅걸음이 세상을 바꾼다', 정의화 국회부의장 '이름값 정치', 권택기 의원 '권택기의 꿈, 약속, 실천', 백재현 의원 '힘들수록 광명정대', 임영호 의원 '세상과 달리기-나는 쉬지 않는 거북이', 차명진 의원 '정치, 그림 속을 걷다' 등과 김학용 의원은 이달 말 '김학용의 꿈, 모두의 해피엔딩을 위하여'를 준비 중이며, 김영선 의원도 다음달 경제와 과학을 주제로 한 출판기념회를 연다. '정치'와 '꿈'이라는 단어가 제목으로 많이 들어갔다.

'나의 도전, 나의 열정'이라는 자서전을 낸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얼굴을 붉힌 사연을 폭로(?)하면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차기 총선에서 대구 출마를 검토 중인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TK 출신 김부겸의 인생과 정치, 나는 민주당이다'를 내고 "TK 출신으로 민주당 정치를 한다는 게 무슨 파문(破門)을 당할 각오를 해야 했던 시대였다"고 서문에 썼다.

흥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출판 러시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지역 의원들의 출간이 궁금했다. 올해 출간 계획이 있는지 의원실 27곳에 물었다.

김성조 의원(구미갑)은 11월 15일 '영원한 촌놈 김성조의 구미당기는 이야기' 출판기념회를 열 계획이다. 정치 입문부터 지금까지의 의정활동을 담담한 어조의 수필로 내놓는다. 예고판 격인 의정보고서를 이달 초 지역에 돌렸다. 이철우 의원(김천)도 '출근하지마라, 답은 현장에 있다'의 2탄을 곧 내놓는다. 의정활동 중 생긴 에피소드를 재치있게 그려보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최경환 의원(경산'청도)은 지식경제부 장관 시절 활약상(?)을 묶어 '황소 장관의 못말리는 500일'(가칭) 원고를 마감했고, 김광림 의원(안동)은 안동 문화를 총체적으로 망라한 '안동'(가칭)을 쓰고 있다. 이 밖에도 성윤환 의원(상주)은 상주 발전을 소재로 수필을,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병) 등도 출판을 계획 중이다.

◆후원금 잿밥 관심 출판기념회?

하지만 정치인들의 출간은 가을, 독서의 계절과는 무관하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자신의 재도전을 알리거나, 정치철학을 홍보하겠다는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치판에 있는 그 누구도 이 말을 믿지 않는다. 합법적인 후원금을 마련해 '전쟁'에 임하겠다는 숨은 뜻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공직선거법 103조 5항에 따르면 선거일 90일 전부터는 선거 후보자의 출판기념회를 금지하고 있고, 행사를 열려면 올해 안에 치러야 하기 때문에 부랴부랴 준비하는 곳도 많다.

지역 의원실로부터 들은 책 이야기는 씁쓸했다. 적나라한 폭로가 많았다. "경기도 좋지 않은데 목적이 불순한 출판기념회는 오히려 독이다" "책 하나 써보라는 식으로 던져놓고 본인은 행사장에서 사인만 한다" "저자는 본인이지만 정작 본인은 책의 내용을 모른다" "이런 기사 쓰지 마라, 책 쓰라고 할지 모른다" 등등.

지역구 한 보좌관은 아예 "나랏일에 바쁘다면서 언제 책을 다 썼는지 대단하고 궁금하다. 임기 말에 너도나도 책을 내는 것은 사실 막판에 한밑천 건져보려는 '한탕 돈벌이' 목적이 더 크다. 출판기념회 수익금(서적판매 등)은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순전히 자기 몫이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을 내더라도 깊이 사색하고 공부해서 자기 손으로, 읽히는 책을 냈으면 싶다"고 했다. 선거에 임박해서 여는 출판기념회를 바라보는 정치권 내의 시각부터 삐딱한 것이다.

그래선지 최근에는 톡톡 튀는 이벤트로 출판기념회를 준비한다. 그렇고 그런 출판기념회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함께 대담 형식으로 행사를 진행했다. 일각에서는 안철수-박경철의 '청춘콘서트'를 흉내냈다고 비판했지만 신선한 평가를 받았다. 정의화 국회부의장은 국악 공연과 유명 지휘자의 피아노 연주가 진행됐다. 8일 한나라당 김영우 의원 행사에는 진행자로 개그맨 김용만 씨가 나섰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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