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사] "공기업 이전 제일 먼저 대구로 갈 것" 권진봉 한국감정원장

입력 2011-09-09 07:32:59

"부인에게 잘해 주세요. 하느님이 맺어 준 사람이라서 영원히 내 옆에만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먼저 보내고 나니 미안하고 허무한 생각뿐입니다."

권진봉 한국감정원장(58)은 두 달여 전 상배했다. 권 원장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평신도로서 선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국에 걸쳐 13명밖에 되지 않은 '견진교리' 봉사자로 활동할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인이 수락산 성지순례 하산 길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다. 전날 가족여행을 다녀온 직후라, 갑작스런 아내의 사고는 그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한 것 같다.

"자녀들은 이미 출가했습니다. 저녁에 온기가 없는 집에 들어가 있으면 봉사활동을 마친 마누라가 지친 모습으로 이내 들어올 것만 같아요. 아직도 아내를 긴 여행을 떠나보낸 것 같기만 합니다."

두 달여 만에 가슴에 묻어버리기에는 아내의 빈자리는 컸다.

그는 업무 이야기를 꺼내자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가정사는 가정사고, 지금 감정원은 43년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중요한 시기에 감정원의 키를 잡고 있는 선장으로서 어깨가 무겁습니다."

감정원은 대대적 조직개편을 앞두고 있다. 핵심 기능인 감정평가업무 중에서 민간에 넘겨줄 수 있는 부분은 서둘러 떼 내 이양하고 공적평가 등 공기업으로서의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감정원 개편의 핵심이다. 관련 법안인 부동산 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은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넘어가 본회의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야당의 반대 등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정치권의 미온적 태도 때문에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에 처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권 원장은 "부실 감정평가의 원인은 ▷법적 구속력 없는 감정평가 기준과 ▷발주자의 전문성 부족 ▷제대로 된 감정평가정보시스템의 부재 등 3가지"라며 "현행 제도로는 이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감정원은 대구 혁신도시로 이전될 예정이다. 이 부분에 대해 권 원장은 "어느 공기업보다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공기업 이전이 늦춰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본사 부지 매각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감정원은 국내 최대 사무공간인 삼성동에 위치해 있는데다 한국전력과 접해 있어 패키지 매각이 가능한 이점이 있다. "대구 동구 혁신도시에 입주할 본사 건물이 내년 말까지 완공되면 전국 혁신도시로 이전할 공기업 가운데 가장 빠르게 이전을 완료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1천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직원 750명 규모의 감정원이 대구로 이전할 경우 지역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35년간을 쉬지 않고 공직생활을 해 온 권 원장이 이끌고 있는 감정원은 최근 국가생산성대회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평가단은 정부의 감정평가시장 선진화 추진에 따른 환경변화 등 중요한 시기와 여건 속에서도 조직구성원의 동요 없이 조직역량을 결집해 낸 권 원장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지속적인 경영 효율화, 다양한 평가기법 개발과 부동산 가격정보의 품질 향상 등을 통해 정부의 정책지원에 기여하겠다"는 것이 2년 반 임기를 남겨 둔 그의 포부다.

지역을 생각하면 답답하다. 고향인 문경은 더더욱 그렇다. 중앙과 지방 정치권이 좀처럼 화합하고 융화되지 않아 지역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과 시장 사이에 완충제 역할을 할 지역어른이나 중진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마땅한 인물도 없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자신이라도 나서서 중앙-지방 정치권의 가교역할을 담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단다.

대구경북 전체도 마찬가지다. 감정원은 현재 대구경북에 대구'구미'안동'포항 등 4곳에 지점을 두고 있지만 서울의 1개 지점만큼의 매출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감정평가 실적이 저조하다는 것은 토지 등 부동산 매매가 활발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그는"지역 발전을 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 큰 건수의 감정평가가 러시를 이루는 때가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문경 점촌초교, 문경중, 휘문고, 서울대 농공학과를 졸업한 뒤 기술고시로 공직을 시작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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