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시심이 묻어나는 이맘 때면 행복해요"
습기를 머금었던 여름이 물러갔다. 선선한 바람에 가을이 묻어온다. 평소엔 무딘 감각이다가 가을이 되면 슬며시 시심(詩心)이 인다. 매년 이맘때쯤 "이번 가을엔 꼭 시(詩) 몇 편을 외워야지"라고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 다짐은 올해도 계속 '진행 중'이다. 지금은 내 안으로 들어오는 가을을 가슴 설렘으로 맞이하는 순간이다.
◆포도 수확을 기다리는 농심
상주시 화동면 '신의 터 농원' 조용학(53)·김갑남(52) 씨 부부. 가을이 깊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여름 내내 온갖 정성을 쏟아 온 포도밭에서 포도가 영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수확을 기다리는 요즘이 1년 중 가장 행복한 때다. "우리는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기 재배 영농법이라 그렇게 탐스럽지는 않아요. 하지만 내 자식처럼 아끼며 매일 밭에 나가 뽀뽀해 줘요." 김 씨는 강렬한 태양볕에 익어가는 포도송이에 무한한 애정을 품는다. 이들 부부는 도시에서 귀촌, 농부로 변신한지 13년째다. 조 씨는 "그동안 공들여 땅심을 길러왔는데 인제야 기름진 땅으로 변하는 것 같다"며 "내년부터 결실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동안 힘들게 농사를 지었지만 소득과는 거리가 멀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들 부부는 귀촌 후 청정농사를 짓기로 했다.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아 10년이 넘도록 농약과 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기 영농을 해오고 있다. 그 결과 6천600여㎡(2천여 평)의 포도농사 수익은 남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도 불만은 없다. 이들 부부는 "내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농사를 짓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도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신의 터 농원은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포도와 쌀, 고구마, 곶감 등은 신뢰해주는 전국의 단골손님과 직거래를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포도를 생산하면 모두 무농약 포도즙으로 만들 계획이다. 그래서 이들이 만드는 포도즙은 최고의 상품으로 인정받는다. 이달 2일 이들 부부의 포도밭을 방문했을 때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우리 포도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영글어 가고 있어요." 이들의 모습에서 문득 현대판 밀레의 '만종' 같은 모습이 떠올랐다.
◆가을엔 누구나 시인(詩人)
윤종호(52) 씨는 서양화가다. 계명대 서양학과(80학번)를 졸업하고, 현재 대구시 남구 대명동 프린스호텔 맞은편에서 화랑 '예솔 아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시화전의 대가다. 대구·경북 초·중학교의 시화전을 준비해 준 경력만 자그마치 25년을 넘는다. 이제 시를 보는 감각은 웬만한 시인을 능가한다. "시어는 리듬감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울 뿐 아니라 작가의 의도까지 잘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연간 7천여 편의 시화작품을 만든다.
시화전에 제출할 작품 요청이 들어오면 직접 글씨를 쓰는 옛날 방식의 시화전을 고집한다. "요즘은 학생들이 컴퓨터로 쉽게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진정한 시인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가격이 조금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비전문가에게 맡기는 학교도 있다는 것. "맞춤법도 틀리게 되고, 시의 운율도 제대로 맞출 줄 모르는 잘못을 저질러 어린 학생들에게 평생 잘못된 내용을 그대로 각인시키게 되는 위험이 있다"고 한다. 시화전은 학생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윤 화백은 "요즘은 직장에서도 시화전 열풍이 일고 있다"고 말한다. 감성이 풍부한 40, 50대 직장인들이 직장 내 시화전에 참여하면서 학창시절에 꿈꾸던 문학 소년소녀로 되돌아가는 행복감을 맛볼 수 있다는 것. 특히 "딱딱한 인상을 주는 기관일수록 부드러운 시적 감성이 더 필요한 법"이라고 덧붙인다.
이홍섭기자 hslee@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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