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왜 그래요." "원래 쫌 그래요."
얼마 전까지 오고 간 대화였다. 대구를 찾은 외지 기업인이나 지역 출향 인사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다.
'대구가 답답하고 폐쇄적이고 또는 너무 보수적'이란 이야기들이다. 워낙 많이 들어온 말들이고 공감하는 부분들이 있는 만큼 별로 부정하지 않았다. 때론 '원래 대구가 그러니 이해하라'는 위안의 말을 건네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답변이 달랐다.
"나도 대구가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 대구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두고 하는 말이다.
대회 초반 일부 서울 언론들이 '텅 빈 관람석' '실패한 대회' '대구로 인해 한국 위상이 추락했다'는 악의적인 보도로 대구 대회를 폄하한 탓에 서울에서 지인들의 걱정스러운 전화가 몇 차례 걸려왔다.
이때마다 가슴에 차오르는 열을 식히며 '대구 자랑'을 했다.
매일 수만 명이 입장한 경기장은 항상 질서 정연했고 선수와 함께 호흡하는 시민들의 열기로 달구벌의 여름밤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수많은 지역 대학생들이 통역으로 때론 경기 진행 요원으로 몸을 사리지 않고 일했고 대구 도심은 세계 어느 대도시와 견주어도 비교 대상이 없을 만큼 깨끗했다.
대회 시작 전까지 대구세계육상대회에 그토록 무관심했던 일부 서울 언론들이 약속이나 한 듯 대회가 시작하자 왜 그토록 비난의 목소리를 올렸는지 아직도 이해 가지 않는다.
'대구인 탓에 그랬을까.'
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후 대구는 항상 우울했다.
초년병 시절 상인동 가스 참사를 경험했고 IMF 때는 전국으로 진출했던 대구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을 했다. 또 그토록 목을 맸던 위천국가산업단지는 정권이 두 차례 바뀔 동안 선거철 단골 공약으로만 떠오른 뒤 결국 흐지부지됐다.
2000년 이후에는 다시 중앙로역 지하철 사고가 터졌고 최근에는 지역 발전의 필수 조건이라고 여기던 영남권 신공항마저 무산됐다.
이때마다 대구는 좌절했고 일부에서는 '사고 도시' 또는 '지역 이기주의'로 뭉친 폐쇄적인 도시로 대구를 격하시키곤 했다. '고담'(범죄와 사고가 난무하는 도시) 대구란 수치스런 별명까지 안기곤 했다.
이러한 선입견이 일부 서울 언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바꿔 본다면 대구는 얼마나 훌륭했는가. 서울 사람의 기준으로 '국제공항이 왜 필요한가'라고 여기던 '촌 도시'가 202개국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제대회를 무난히 치러냈다. 서울올림픽은 고사하고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이나 최근 유치한 평창 동계올림픽과 견주어 보면 서울(중앙정부)의 관심은 너무 초라했고 지원 또한 부족했다,
대회 시작 전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대회가 시작되면서 6천여 명의 자원봉사자의 땀과 공무원의 노력, 그리고 대회를 응원하는 시민들의 열정 속에 녹아버렸다.
도시가 형성된 후 열린 가장 큰 국제행사였고 가장 많은 외국인이 찾은 대회였지만 내륙 도시, 폐쇄적이라던 대구 사람들은 누구보다 열린 마음으로 세계 속에 대구를 개방했다.
이제 화려했던 '잔치'는 끝났다.
다시 대구경북은 신공항 건설과 대기업 유치, 상생 발전을 위한 시도 협력과 통합이라는 현실적 과제들과 맞닥뜨려야 한다.
그러나 '되는 일이 없다던 대구'는 세계육상대회를 통해 '저력 있는 도시'란 평가를 얻고 있다. 시민들과 공무원은 자신감을 갖게 됐고 세계와 호흡한 경험을 살린다면 어려운 과제도 하나 둘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갖는다.
대회를 마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 도심 곳곳에는 대회 홍보를 위한 조형물들이 남아있다.
2011년 여름, 대구는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이 추억이 대구의 새로운 발전 동력으로 승화되길 기대해 본다. '자랑스러운 대구 파이팅!'
이재협(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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