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만성 신분전증 진단받응 가나인 아풀 벤자민 씨

입력 2011-09-07 10:27:24

2007년 여름 아풀 벤자민(42'가나) 씨는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다. 가난한 가족들과 친척들은 십시일반 모은 돈 2천800달러(한화 300여만 원)를 그에게 건넸다. 아풀 씨는 이 돈으로 한국행 왕복 비행기표를 샀다. 관광비자를 손에 든 채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홍콩을 거쳐 한국에 도착했다. 비행기삯 2천800달러는 한국에서 일하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였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만성 신부전증 진단을 받은 뒤 혈액 투석을 받지 않고는 하루도 견디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토록 바랐던 '코리안 드림'은 병과 함께 산산조각 부서졌다.

◆"아픈 게 싫어요"

6일 오후 대구 달서구 이주민선교센터에서 만난 아풀 씨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몸은 아파도 그를 돕기 위해 힘쓰는 주변 한국인들의 노력에 마음이 조금 편해진 상태였다. "수술만 받으면 가나로 돌아갈 거예요. 아이들이 정말 보고 싶어요." 아풀 씨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다.사람들은 공장에서 그의 외모만 보고도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현재 가나는 우리 정부의 고용허가제 대상국이 아니어서 가나인들은 취업방문비자를 받을 수 없다. 아풀 씨는 자신의 신분과 생명을 보호받을 수 없는 이 땅에서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가나에서도 가난한 이들의 삶은 위태로웠다. 가나에 있는 호주 기업에서 건물 짓는 일을 했던 그는 두 달에 한 번씩 재계약하며 근근이 삶을 이어갔다. 그렇게 한 달 꼬박 일하면 우리나라 돈으로 10만 원 정도를 벌었다. 부인은 집에서 비누를 만들고 아풀 씨는 공사장에서 일한 돈으로 자식 넷을 먹이고 입혔다.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며 살던 그에게 누군가 "한국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한국으로 왔다.

◆쫓기는 삶

한국에 오자마자 서울의 한 금속 공장에 취업했다.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며 휴일도 없이 매일 일하면 130만원을 벌 수 있었다. 불안의 대가는 10배 이상 늘어난 월급이었다. 방세와 식비 등 최소한의 생계비만 빼고 모두 집으로 보냈다. 이런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특별단속기간이 되면 공장을 잠시 떠나야 했다. '사장님'들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장기 채용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아풀 씨는 2009년 다른 공장을 찾아 대구로 내려왔다.

대구에서는 한동안 주물공장에서 일했다. 불꽃이 사방에 튀고 쇳가루가 얼굴에 튀는 위험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그때 생긴 상처가 남아 있다. 고된 일만큼 고용주에 대한 기억도 좋지 않았다. 한국어를 잘 못하는 아풀 씨는 '사장님' '나쁘다' '좋다'는 단순한 표현밖에 하지 못한다. 주물공장이 폐업하면서 당시 사장은 밀린 임금 한 달치를 주지 않았다. 그때부터 삶은 엉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8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풀 씨는 "소변 볼 때마다 피가 섞여 나왔고 피로가 가시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몸은 신호를 보냈지만 미등록 노동자라는 사실을 들킬까봐 겁이 나 병원에 갈 수 없었다. 그해 가을 아풀 씨는 결국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만성 신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일주일 넘게 입원해 있으면서 생긴 병원비와 치료비는 그가 고스란히 지불해야 했다.

◆수술만 받을 수 있다면

아픈 몸은 곧 짐이 됐다. 일주일에 세 번씩 혈액 투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소외계층 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아 혈액 투석은 무료로 받을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치료를 위해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체류비자(G1)를 받아 잠시 머물 수 있지만 영원히 한국에 있을 순 없다.

아풀 씨는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싶어했다. 만약 수술을 받지 않으면 평생 혈액 투석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가나는 수도인 아크라(Accra)에 큰 병원 한두 곳밖에 없을 정도로 의료 환경이 열악하다. 혈액 투석을 받는 것조차 무리다. 게다가 건강보험 제도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아 행여 혈액 투석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다. 한국에 있는 동안 신장 수술을 받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아픈 아풀 씨의 손을 잡아준 것은 남동생 조나단(가명'35)이다. 남동생은 형에게 자신의 신장 한쪽을 주기 위해 지난달 가나에서 한국으로 왔다. 현재 이들은 2차 조직검사까지 받고 최종 수술 승인만 남겨둔 상태다. 문제는 수술비. 한국 정부에서 도움을 준다고 하더라도 1천만원이 훌쩍 넘을 아풀 씨의 수술비와 병원비를 모두 감당하기는 힘들다. 또 신장을 기증하는 남동생 병원비는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쉽게 수술을 결심할 수 없는 노릇이다. "형에게는 아이가 넷이나 있잖아요. 살아야 할 이유가 충분해요." 조나단은 오늘도 형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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