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남자가 당신 예금 찾으러…"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수법들

입력 2011-09-07 09:53:04

최근 농협과 네이트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뒤 보이스피싱으로 이어지는 피해가 지역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보이스피싱 수법이 과거 '가족 신변 위협형'에서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는 '지능형 범죄'로 진화하면서 피해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직장인 최모(35) 씨는 얼마 전 은행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은행 직원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수상한 남자가 당신의 통장과 신분증을 들고 예금을 인출하러 왔다. 고객님의 개인 정보가 유출된 것 같다"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몇 분 뒤 경찰과 검찰을 사칭한 이들에게서 차례로 연락이 왔다. 그들은 최 씨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대며 "금융 관련 범죄에 연루됐으니 신용카드 번호와 비밀번호를 빨리 알려달라"고 재촉했다.

당황한 최 씨가 정보를 알려주자 다시 전화를 걸어 "통장에 범죄에 사용된 1천만 원이 곧 입금될 테니 국고 통장으로 송금하라"고 지시했다. 정체 모를 돈 1천만 원이 입금된 것을 확인한 그는 곧장 해당 계좌로 송금했다. 최 씨는 최근 보이스피싱에 자주 이용되는 '카드론' 사기에 당한 것이다. 최 씨의 계좌에 입금된 돈 1천만 원은 사실 범인들이 최 씨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몰래 대출받은 돈인 것.

이처럼 최근 활개를 치고 있는 보이스피싱은 해킹 등을 통해 유출된 개인정보를 악용해 '카드론'으로 사기를 치기 때문에 대부분 피해자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카드빚을 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카드론은 카드사에서 자사 회원들을 대상으로 이용 실적에 따라 대출을 해주는 상품. 별도의 개인 확인 절차 없이 ARS로 대출을 받을 수 있어 범죄에 악용되기 쉽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대구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올해 농협과 네이트에서 해킹된 대량의 개인정보 유출이 보이스피싱 사기를 부추기고 있다"며 "군대나 유학 간 자녀가 납치됐다며 송금을 유도했던 고전적 수법이 통하지 않자 해킹을 통해 알아낸 피해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를 들먹이며 수사기관인 것처럼 교묘하게 속이고 있어 알아채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예전엔 주로 노인들이 범죄 대상자였지만 최근엔 대졸 학력자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도 피해를 많이 당하고 있다"고 했다.

발신번호를 조작한 보이스피싱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대구 북부경찰서 형사과에는 김모(60'여) 씨가 찾아와 "딸이 납치됐는데 납치범들이 3천만 원을 요구한다"며 울먹였다. 다른 지역에서 근무 중인 딸의 전화번호로 모르는 남자가 전화를 걸어 "시키는대로 돈을 보내지 않으면 딸을 죽이겠다"고 협박한 것. 경찰이 납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한 결과 이는 보이스피싱으로 밝혀졌다. 최근 인터넷폰으로 번호를 조작하는 것이 가능해지자 최근 대규모로 유출된 개인 정보를 이용해 교묘하게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보이스피싱 사기는 최근 들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8월 259건이던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올해 같은 기간 275건으로 6.1% 증가했다. 피해 금액도 같은 기간 27억4천700만 원에서 29억5천100만 원으로 늘었다.

경찰은 금융 사기범들의 수법이 해마다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개인의 신용카드 번호와 비밀번호 등 금융정보를 묻는 일은 절대 없다"며 "특정 계좌로 송금을 요청하거나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즉시 112로 전화하면 해당 계좌의 지급정지를 요청할 수 있다"고 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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