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의 경기 참관기] 6)추선희 수필가

입력 2011-09-02 08:08:49

내가 사는 동네에서 열리는 지구마을 운동회

나는 대구스타디움 인근에 산다.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 나의 저녁 산책 코스 중심에 대구스타디움이 있다. 집을 나서서 가로수가 아름다운 길을 걸어 스타디움에 도착한다. 그곳을 오른편으로 돌아서면 바람의 결이 달라진다. 어쩌면 스타디움을 감싸고 부는 바람 때문에 이곳을 산책하는지 모른다. 경기장 뒤편 산에서, 도시의 불빛에서 조금 비켜 있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맑고 시원한 바람을 마주하면 낮 동안의 분주했던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겨울을 지나 봄까지도 밤에는 그저 고요했던 이곳이 여름 초입부터 조금씩 붐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여름 방학이라 가족 단위로 운동을 많이 나와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약간은 흥분되고 달뜬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었다. 이곳을 거니는 사람들의 마음에 세계육상경기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 또한 이렇게 큰 경기가 우리 동네에서 열린다는 것을 점차 실감했다. 예행연습을 하는 소리가 밤 경기장 밖으로 흘러나올 때면 운동회를 앞둔 아이의 마음이 되었다. 북소리와 사회자의 목소리, 애국가가 흘러나올 때면 행사가 잘 치러져야 될 텐데라는 애국의 마음이 생겨났다.

드디어 지구라는 마을의 운동회가 내가 사는 도시, 내가 사는 동네에서 열리고 있다. 나는 육상경기의 종목과 규정과 유명 선수들을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왠지 육상경기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단순해지며 그득해진다. 어쩌면 육상은 내가 가장 사랑할 가능성이 많은 스포츠인 줄 모른다. 준비할 것은 몸이 거의 전부인 운동이 다분히 매력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것의 적나라함, 정확하게 말하면 관절과 근육의 적나라함이 보기 아름답다. 관절과 근육에 마음을 실어 최대한 빨리 달리고, 최대한 멀리, 높이 뛰고자 하는 것에서 그 동작을 하는 선수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 즐겁다. 시선과 근육을 일치시키고 마음과 골격이 일체가 되는 아름다움을 육상에서만큼 쉬이 목격하는 스포츠가 있을까.

하루 저녁 시간을 내어 경기를 관람하였다. 관중들은 자신의 마음을 선수들의 몸에 싣고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질렀다. 선수들은 모든 세포를 한 지점을 향해 발진시켜 몸을 솟구치고 원반을 던지고 장애물을 건너뛰었다. 레이스를 마친 뒤 숨을 고를 때의 들썩이는 등조차 감동이었다. 출발선상에 앉거나 서서 수년간 닦은 기량을 한순간에 보여주려 할 때의 긴장감이 내게로 옮겨왔다. 관중들에게 인사를 할 때의 표정과 동작, 스스로에게 되뇌는 들리지 않는 주문조차 그 넓은 경기장에 여과 없이 전해졌다. 시상식에서 승자들의 국기가 올라가고 금메달리스트의 국가가 울려 퍼질 때 나의 가슴도 뭉클해졌다. 승리의 환희와 실패의 안타까움을 선수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웠을 뿐 그들의 이름과 성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참가한 선수들 모두 대구라는 마을에 온 존중받아야할 승리자들이었다.

육상경기, 말 그대로 땅 위에서 펼쳐지는 겨루기에서 나는 마음이 드러나는 몸에 대해 경탄한다. 몸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끝없이 도전하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그 정직한 아름다움에 박수를 마구 치고 싶어진다. 불빛이 환한 경기장 안에서 뛰고 달리고 박수를 치는 동안 경기장 밖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도 함성과 박수소리를 듣고 같이 흥겨워한다. 선수도, 관람객도, 관람객이 아닌 이들도 거대한 등불 같은 경기장을 중심에 두고 나름의 방식으로 지구 마을 운동회를 즐기고 있다.

걷고 달리고 싶은 것은 본능인지 모른다. 본능이므로 그것에 유능한 선수들을 바라보고 함께 환호하고 안타까워하는지 모른다. 육상경기는 모든 스포츠의 출발선, 그래서 그것이 주는 감동이 더욱 생생하고 직접적이다. 지금 대구에서 그러한 감동이 일어나 퍼지는 중이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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