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강의하는 과목 중에 두 가지 이상의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수업이 있다. 학생들이 생각한 독특하고 재미있는 구상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발전시켜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작품 속에 LED 전구를 삽입하여 컨트롤러로 조작해 빛이 움직이게 한다든가 스테인리스 판을 직각으로 굽혀 특수 용접하여 구조물을 만드는 등의 기술적 문제는 과에서 가진 기자재와 꽉 막힌 커리큘럼 구조상,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기에 여간 곤란한 문제가 아니다. 이미 끄집어낸 아이디어들이기에 "참 좋은 아이디어이나 우리 과에는 그 만한 기자재가 없으니 다른 방식의 작업을 하는 게 어떻겠니?"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필자도 학창 시절 기발하고 엉뚱한 아이디어들을 현실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음을 고민했었다. 그래서 사장된 아이디어도 많다. 반면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 미국에서 공부할 때 그곳 미술학교의 시스템은 퍽 인상 깊었다.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현실로 적용시킬 수 있도록 교수는 늘 연구실을 개방해 두었고, 적절한 설비를 갖춘 작업실에서는 연구원들이 상주하며 학생들에게 기술 자문을 해주었다. 규모가 작은 미술 단과대학이었기 때문에 학교 내에서 해결되지 않는 작업은 학교 밖 공장이나 전문가에 연결시켜 주었고 또 지역의 다른 대학과 연계해서 단과대의 약점을 상쇄시키고 학생들의 작업을 현실화시켰다. 학생들의 아이디어들을 최대한 살리려 학교 간의 연계, 산'학 연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단과대학보다 종합대학이 많다. 종합대학에서는 학과 간의 연계가 용이해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기 쉽다. LED 작업에 대한 자문을 얻기 위해서 전자공학과를 찾아간다든가 스테인리스 작업을 위해 공대 공장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얼마든지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이 종합대학의 장점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커리큘럼 규정에 없기 때문에 과별 교류가 한 대학 안이라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기 있는 학과는 고무줄처럼 학생 수를 늘려서 기득권을 지키려 담을 높게 치고, 경쟁률이 낮은 학과는 바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 존폐 위기에 몰린다.
세월이 흐르면 인기 있던 학과가 쇠퇴하고, 인기 없던 학과가 떠오를 수 있다. 특히 인문, 사회, 자연과 같은 기초학문과 예술은 일시적으로 그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을지언정,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함께 가야할 학문이다. 단기적 인기에 따라 특정 학과를 만들고 없애는 근시안적인 정책에서 벗어나고 학과 간의 벽을 조금씩 낮추어 원활한 소통과 학과 간 융합이 이루어지면 학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들을 구체적 결과물로 보여지는, 말 그대로의 종합대학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세용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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