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정치를 따져야 미래가 보인다

입력 2011-09-01 10:59:23

자기중심적인 보수 전사 오세훈의 퇴장으로 끝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 투표는 미처 감지하지 못했던 변화를 나타냈다. 그것은 정치가 생활의 영역이라는 점이며 유권자들이 삶과 관련해 쟁점을 따지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수의 서울 시민들은 무상급식이 재정적 부담을 초래해 국가적 명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나라당의 주장을 무리한 것으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의 유권자들은 요란한 이념 대결로 비친 이 사안에 대해 가정 형편에 관계없이 아이들이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무상급식하자는 데에 더 공감했다. 이념적으로 부딪히는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밥 먹이는 문제를 가지고 웬 호들갑을 떠느냐고 인식한 측면이 강했던 것이다.

정치가 생활과 밀접하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과거에는 국민들이 정치와 생활을 분리해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독재에 대한 민주화 요구, 과거사 청산, 인권 개선, 성장과 분배 논란 등은 모두 국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이었지만 거대 담론으로 치달으면서 삶과 연결시키는 데에는 소홀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정당들이 정치적 목적이나 이익을 위해 이러한 쟁점들을 주로 국가적 안정, 국부의 성장, 개혁 과제 등으로 포장해 일부 호도한 것에도 원인이 있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자신의 환경에 의해 형성된 막연한 정치적 성향에 따라 표를 던졌다. 지연, 학연 등으로 지지 정당을 선택하고 선호하는 인물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으로 뽑았다. 공약보다는 정당이나 인물에 좌우되고 장밋빛으로 가득한 공약들의 실현 가능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았다. 선택이 이런 과정을 거쳐 이뤄지다 보니 후회도 그만큼 컸다. 지지했던 인물이나 정당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정치권을 싸잡아 비난하고 정치에 대한 불신도 깊어졌다. 정치가 삶을 개선시키지 못함에 따라 정치를 조롱하면서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점차 변화하고 있고 앞으로 더 변화될 것이다. 이런 변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진전된 측면도 있지만 삶이 팍팍해지면서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정치를 삶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해 인식하면서 떠오르는 쟁점들도 바뀌고 있다. 반값 등록금, 전세 상한제, 복지 확대 등의 쟁점은 분명 과거의 거대 담론과는 달리 국민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들이다. 국민들이 중시하다 보니 정치권에서도 자연적으로 제기할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다. 정부에서 제시한 공정 사회, 공생 발전 등의 화두도 실현 여부를 놓고 비판이 따르고 있지만 국민 생활과 밀착된 문제들이다.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더 날카롭게 따지고 있는 변화를 의식한다면 정부와 정치권도 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기초노령연금 축소를 검토하는 데 대해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었던 노인 계층이 반발하고 과중한 등록금과 실업 사태에 대해 젊은이들도 아우성치고 있다. 여당 텃밭이었던 강원도에서 야당 출신 도지사가 당선되고 부산'경남의 한나라당 기반이 흔들리며 대구'경북에서도 반한나라당 정서가 생겨나고 있는 점은 그러한 변화들이다. 이러한 변화에 소홀하게 대처한다면 여야를 막론하고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국민의 삶을 개선시키는 문제는 더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 지금보다 사회가 더 단순했던 시절에 과거의 지도자들은 여러 흠결에도 불구하고 잘살게 만들었거나 물가를 안정시켰다는 이유로 칭송받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임금, 실업, 비정규직, 저출산율, 보육, 대학 등록금, 다문화가정, 성평등 등 복잡다기한 현안들이 널려 있고 사안별로 개선시켜야 되는 상황이다. 삶의 질 문제 이외에 정부의 방송 장악 논란, 인권 문제 등 민주적 요소의 퇴행에 대한 비판, 지도층 인사들의 부도덕과 부패 문제 등도 지나칠 수 없는 사안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당대에는 숨죽여 지나갈 수 있지만 나중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도 있다.

정치와 생활을 분리한 듯한 과거의 경향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유권자들은 이제 눈을 크게 뜨고 정치를 대하고 있다. 이미지를 중시하거나 의도된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일시적으로는 먹힐 수 있지만 오래갈 수는 없다는 점을 정치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물건값 따지듯이 정치에 대해 따질 수 있는 국민들의 힘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金知奭(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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