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인터뷰] 박철언 前의원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실세로 통하던 박철언(69) 전 의원이 최근 두 가지 사안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4년 3월 '이제 무대를 떠나려고 합니다'며 정계를 떠나 조용히 살고 있던 박 전 의원은 8월 초 자신의 두 번째 시집 '따뜻한 동행을 위한 기도'를 출간했다. 또 노태우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1992년 대선 당시 3천억원의 선거자금을 지원했다고 밝힌 데 대해 김 전 대통령 측이 반박하고 나서자 '사실'이라며 재반박하고 나선 것이다.
최근 이전한 박 전 의원의 서울사무실은 아주 소박했다. 지난 2001년 개업을 한 변호사 사무실도 겸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도 평온해 보였다. 정치 얘기를 꺼내자 박 전 의원은 자신의 시집을 들어 보이며 시 얘기부터 하자고 했다. 그러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에게 건넸다는 3천억원 이야기부터 꺼냈다.
"노 전 대통령이 3천억원을 김영삼 당시 후보에게 줬다는 것을 회고록에 기재한 것은 명백하고 분명한 역사적 진실입니다. 그것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감옥에서 나온 후 들었고 구체적인 것은 김옥숙 여사를 통해 들어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당시 대구 출신인 김용태 총재비서실장을 찾아가서 3천억원을 준 것에 대한 녹음테이프 존재 사실을 알리고 녹음테이프를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는 당시 상황도 밝혔다.
그러면서 "머잖아 죽음을 앞두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쓰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제가 쓴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서도 직접 YS에게 갖다 준 40억원+α를 기록했지만 3천억원은 직접 준 것이 아니라서 쓰지 않은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박 전 의원은 자신이 직접 노 전 대통령이 쓴 초고를 봤다는 사실도 밝혔다. 초고를 직접 본 것은 5년 전이었는데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추진한 북방정책과 남북문제에 대해서는 자신이 관여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초고를 검토했는데 그때 이미 전체원고가 완성돼 있었다는 것.
김 전 대통령이 3천억원의 선거자금을 받은 사실을 반박하고 나선 것에 대해 "받은 사람이 준 사람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며 구속시킨 것은 정말이지 염치없는 이야기"라면서 "자신은 마치 하늘에서 백마를 타고 온 천사인 것처럼 하는데 이미 공소시효도 지난, 20년 전 일이기 때문에 역사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차원에서 직접 반박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슬롯머신 사건 수사로 인해 구속되면서 정치보복을 당했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묻자 "모든 통한과 분노를 감옥에 묻었다"고 말하면서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얼마 전 언론에서도 YS가 집권하자마자 당시 청와대 이모 사정비서관을 불러 박철언을 구속시키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오지 않았습니까"라면서 슬롯머신 사건에 대해서도 뒤늦게라도 사건의 진상과 배후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국세청이 밝혀낸 차명계좌 340여 개를 뒤지니까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와 유력 정치인 등의 이름이 나왔으나 그 부분은 덮어버렸다는 것이다.
자신을 구속시킨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모래시계 검사'로 불리고 있는 데 대해서도 잘못된 것이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모래시계 검사라면 살아있는 권력자를 수사해서 구속시켜야 마땅한데 자신은 대통령의 정적이었고 당시 권력의 뜻을 따른 홍 검사는 권력지향적인 검사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다.
"홍 검사(홍준표 대표)는 YS의 정적 1호를 구속시키고 그 대가로 YS의 공천을 받아서 국회의원이 되지 않았나요? 얼마 전에 대표가 되고 나서 찾아가서는 스스로를 'YS 키즈'라며 넙죽 절하지 않았던가요?"
현 정국에 대해 묻자 "내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면서도 나라가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안보상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다 경제적으로 위기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지역 간, 계층 간, 세대 간 간극이 벌어지는 등의 국민 분열의 위기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가 진단한 최대의 위기 상황은 이런 국가적 위기 상황을 국가와 정치지도자들이 위기로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 화합과 국가 발전, 복지와 통일을 위해 국가적 위기 앞에 여야 지도자들이 정책 경쟁하면서 잘해주기를 바랍니다. 100년 전의 선조들이 했던 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얼마 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외국 잡지에 발표한 대북 및 외교정책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지적했다. "박 전 대표가 내놓은 정책은 일반론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구체적인 것은 하나도 없는데 박 전 대표를 비롯해 여야의 대권주자들은 국가적 위기에 대한 인식과 극복에 대한 분명한 자기 비전을 내놓아야 합니다."
요즘 박 전 의원은 주말이면 대구에 내려와서 대퇴부 골절로 병원에 입원해 계신 96세의 노모 간병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3선 국회의원과 체육부와 정무장관을 거쳐 한때 대권을 꿈꾸던 '6공 황태자'에서 '시인'의 자리로 되돌아온 박 전 의원은 '봄, 오일장'이라는 시를 통해 자신의 평온해진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모진 강풍과 폭설에 더디게 오는 봄/ 한 줌 볕, 산 중턱에 뿌리내린 달래/ 손톱 밑 닳도록 캐낸 밭고랑의 냉이/ 할머니 손때 묻은 소쿠리에서 서로서로 기대어 졸고 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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