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친구들과 골목길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돌담을 타고 넘다가 담이 무너져 엄지손가락을 돌에 찍힌 기억이 있다. 당시 손톱이 빠지면서 전해져 오던 얼얼한 느낌이 글을 쓰면서도 생생하다. 벌초를 하러 잠시 제주도 고향집에 와서 30년 전 내 엄지손가락을 찍었던 돌이 시멘트로 발라져 있는 모습을 보니 참 감회가 새롭다.
제주도의 골목길은 대부분이 돌담이었다. 아직도 남아있긴 하지만 담이 그리 높지 않아 골목길을 지날 때면 남의 집 안이 다 보였다. 여담으로 내가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집에 돌을 쌓아 돼지우리를 만들어 돼지를 키웠고 그 모퉁이에 화장실이 있었다. 물론 화장실도 돌을 쌓아서 만들어서 틈으로 안이 조금씩 다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이 골목길을 안 지나갈 때를 이용해서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는 더욱 가관이다. 돼지들이 밑에서 뭔가를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너무 무서웠다. 원래 그들이 먹는 주식 말고 다른 것도 먹힐까 봐 많은 제스처를 취한 기억이 난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골목길에 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어릴 때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술래잡기하며 뛰어놀던 기억들, 사춘기 때 좋아하는 이성을 골목길에서 숨어서 지켜보던 기억들,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끼리 골목길에 숨어서 담배 피우던 기억들, 성인이 되어서는 신촌 블루스 2집에 수록되었던 '골목길'처럼 커튼이 드리워진 그녀의 방 창문이 보이는 골목길에 접어들 땐 괜히 가슴이 뛰었던 기억들, 그리고 뭔가 일이 잘 안되었을 때 혼자 울고 다짐하던 작은 골목길, 부끄러운 일을 당했을 때 숨기 가장 좋은 아주 작은 골목길 등 개인적인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골목길들이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가수 싸이(Psy)의 '골목길'처럼 누군가가 날 노릴 것만 같은 뒷골목길일 수도 있고 가수 이재민의 '골목길'처럼 아무도 없는 외롭고 쓸쓸한 골목길일 수도 있고 산울림의 '골목길'처럼 고독을 느끼며 한없이 걷는 골목길일 수도 있다. 이렇게 대중가요에도 여러 가지 모습이 나오듯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고 다른 모습을 갖고 있어서 기억도 다양하겠고 색깔도 각각 다 다르겠다.
필자는 골목길 걷기를 좋아하는 편인데 골목길을 걸으며 벽에 낙서된 것도 보고 갖가지 작품들이나 오래되고 시대가 적어준 흔적들을 감상하며 많은 아이디어들을 떠올린다.
대구에는 유명한 골목길이 많이 있다. 한약 냄새 풀풀 나는 약전골목을 비롯해 100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진골목, 대구 서민들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염매시장골목, 종로 화교골목, 뽕나무는 없지만 애국지사와 민족의 혼이 살아 숨 쉬는 뽕나무골목, 길거리 예술로 유명한 방천시장 골목길 등을 한 번쯤은 걸어보며 느껴보자. 90계단 길을 걸으며 지나간 흔적의 숨소리를 느껴 보자. 그러면 자신의 역사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윤정인(뮤지컬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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