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보 속도는?…'20리 반나절' 시골 아버지보다 조금 더 빠르죠

입력 2011-08-23 10:49:55

50km 경기 세계최고기록 100m 환산 땐 25.7초

"얼마나 빨리 걸었노 카마, 읍내 장에 갈라꼬 새벽밥 묵꼬 반나절(3시간가량)을 가능기라. 해거름에 (돌아)올라 카마 미적거릴 시간도 없어. 그게 20리가 넘는 길이라 카이."

1970년대 이전에 젊은 시절을 보낸 아버지들의 무용담 중 하나인 '걸어서 읍내장터 다녀오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짐을 어깨에 메고, 양손에 들어 오가던 그 길을 이제는 자동차로 몇 십분 안에 도착하니 옛 생각에 젖어드는 것도 당연지사. 하지만 귀에 인이 박이도록 들어왔던 그 이야기들은 사실 '경보 선수급' 이야기다.

이번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도 열리는 경보는 사실상 최장시간 레이스다. 50㎞의 경우 3시간40분 안팎이 걸린다. 메달을 따는 선수의 기록이 이 정도니 그만큼 지겨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계기록과 우리네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대비해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온다.

50㎞ 경보의 세계기록은 데니스 니제고로도프(러시아)가 2008년 작성한 3시간34분14초. 초당 3.89m로 전진해 100m를 25.7초에 돌파한 셈이다. 이는 웬만한 여고생의 100m 달리기 실력보다 느린 기록이지만 거리가 길어질수록 얘기는 달라진다. 10리 길이라는 4㎞쯤 되면 17분에 주파한다.

시속으로 환산하면 14㎞로 이 정도 속력은 수준급 마라톤동호회 회원들의 속력과 맞먹는다. 마라톤동호회에서는 3시간 이내에 완주하면 '서브3'이라는 명예가 붙는데 이 타이틀은 '월등한 실력파'로 분류하는 기준이 된다.

20㎞ 구간은 좀 더 빠른 속력을 보인다. 경보 선수들의 국제대회 구간 기록을 살펴보면 2㎞를 8분 내에 주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최고기록을 갖고 있는 중국의 왕젠은 20㎞ 경기에서 첫 2㎞만 8분 21초에 걸었고, 나머지 구간은 8분 안에 소화했다. 가장 빠른 속력을 보였을 때는 7분34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성인 남성의 빠른 걸음을 시속 5㎞로 봤을 때 20리 길(8㎞)은 2시간이 채 안 걸리는 거리다. 그러나 평지가 아닌 산길을 거치고 도랑을 건너는 등 제반 여건을 감안하면 아버지들의 '20리 반나절 주파'는 대단한 실력임에 틀림없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우리의 아버지보다 좀 더 빠른 선수들이 대구시내를 활보한다. 28일(20㎞ 남자), 31일(20㎞ 여자), 9월 3일(50㎞ 남자)이다. 눈여겨 볼 것은 러시아가 세계기록을 독식하는 '경보의 왕국'이라는 점이다. 20㎞ 남자 세계기록은 블라디미르 카나이킨(2007년'1시간17분16초), 20㎞ 여자 세계기록은 베라 소콜로바(2011년'1시간25분08초)가 갖고 있다. 한국기록은 이보다 조금 느린 1시간19분36초(20㎞ 남자'김현섭), 1시간29분38초(20km 여자'김미정)다. 2~4분 차이다.

걷다보면 뛰고 싶고 그러다보니 실격률도 높은 종목이 경보다. 그런데 이런 환경이 기록이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기 일쑤다. 심판 3명 이상으로부터 파울을 받게 되면 실격 처리되는데 2명 정도만 파울이라고 해버리면 심리적 위축으로 기록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 같은 심판으로부터 2번 파울을 지적받아도 실격이다. 파울을 지적한 심판 앞을 또 지나게 될 때 발걸음이 어떨지는 말하나 마나다. 실격 처리되는 선수가 한 대회에 적어도 5명 안팎, 많게는 참가 선수의 절반 가까이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떤 종목보다 심리적 안정이 중요한 종목이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