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시낭송 모임에서 마련한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서정시 읽는 도시 - 대구'란 슬로건 아래 대구문화재단이 후원하는 행사였다. 시는 문자로 읽고 이해하기보다 혀끝에 올려 음송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왜냐하면 시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시의 본질인 리듬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시 낭송 행사는 되도록 자주 열리는 것이 필요하리라 본다.
그 자리에서 확인한 것은 시가 더 이상 젊은 예술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970, 80년대만 하더라도 문학행사의 청중석은 파릇한 학생들로 채워졌다. 요즘에는 어떤 문학행사에 가 봐도 마흔 줄 아래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푸념이 나온 지 이미 오래되었다. 게다가 일반 독자는 거의 없고 시인들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아저씨 시인, 아줌마 시인의 그들만의 잔치인 셈이다.
그런데 시인 아저씨는 괜찮은데 아저씨 시인은 어쩐지 어감이 좀 낯선 느낌이다. 분명 시인들도 다 아저씨이고 아줌마일 텐데 무엇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는가. 일상의 비루함에서 벗어난 탈속적 존재가 시인이라는 고정관념 탓이리라. 생명을 부지하는 한 시인이라고 밥 구하고 돈 버는 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터.
하지만 시와 돈의 거리는 멀어도 한참 멀다. 함민복 시인은 '긍정적인 밥'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짐짓 담담하게 진술하지만 이 시대가 시와 시인을 너무 박하고, 헐하게 대접하는 건 아닌가 하는 섭섭함을 숨기고 있다.
근대 이후 시민적 삶과 예술가의 삶의 불일치를 겪은 작가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상과 김유정은 말할 것도 없고, 토마스 만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의 내용이 그러하고, 시에 자신의 생애를 걸었던 릴케가 로댕을 처음 만나 털어놓은 고민의 내용이 그것이었다. 생활의 윤택과 예술의 광휘는 고루 누릴 수 없는 법. 그러나 일상을 떠난 삶이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속된 표현이긴 하지만, 밥 먹고 똥 싸고, 새끼 낳고 기르는 것 외에 인생에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일상의 비루함과 싸우는 일을 자신의 예술적 동력으로 삼았던 이가 김수영이다. 그는 처와 자식을 위해 끔찍하게 싫어했던 번역 일을 하고 토끼를 기르고 닭을 쳤다. 밀린 고료 때문에 잡지사 기자와 다투고, 돈 몇 푼 때문에 이발쟁이, 야경꾼과 승강이질했다. 요컨대 시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생활인으로서 자의식이 끊임없이 부딪치는 가운데 자신의 시와 삶을 꾸려나간 것이다. 그는 '옥색빛 나는 새로 산 금성표 라디오'를 월부로 들여놓고 고리대금업을 하며 살아가는 속물스런 자신에 대해 가차없이 공격했다. 시를 배반하고 사는 자신의 생활을 공격함으로써 시의 현실성을 얻으려 했던 것이다.
그는 현대인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정치세력의 변경만으로 불가능하며 각자의 내부에서 혁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그것은 자신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속물적 속성을 인정하고 그것과 부단히 싸움을 벌이는 가운데 획득되는 것이다. 그의 시는 '이 안락에, 이 무사에, 이 타협에, 이 체념에 마비되어 있'으며, '마비되어 있지 않다는 자신에 마비되어 있는' 상태에 머물며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아줌마 시인, 아저씨 시인들의 옆구리에 비수를 갖다 댄다.
누구나 아줌마가 되고 아저씨가 된다. 다만 육체적 노쇠와 더불어 타성화되는 의식의 늙음/낡음이 문제다. 온갖 비리와 협잡과 몰염치가 횡행하는 우리 사회의 근저에는 갈수록 속물화되고 있는 자신을 쉽게 용서하려는 태도가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닌가. 오늘 우리가 서정시를 읽는 진정한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장옥관(시인)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