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 명성 다시 한번

입력 2011-08-16 10:16:54

대구미술관 첫 프로젝트룸전 '메이드 인 대구'

대구미술관에서 처음 문을 여는 프로젝트룸에서 열리는 첫 번째 전시는 '메이드 인 대구'(Made in Daegue). 1970년대 대구 작가들이 열어 전국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대구현대미술제'의 맥을 이어 현재 대구에서 벌어지는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현대미술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읽어나갈 수 있는지를 조명하는 전시다. 대구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구성수, 권오봉, 남춘모, 박종규, 배종헌, 이교준, 이기칠, 이명미, 정용구가 참가해 작품을 전시한다.

1974년 대구현대미술제 참여 멤버였던 이명미는 과감하고 천진난만한 작품을 선보인다. '오렌지와 핑크색입니다 혹 색면추상으로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커다란 캔버스 위의 조형적인 문자들은 재기 넘친다. 애틋하고 쓸쓸한 문장들이 캔버스 위에서 감동을 주기도 하고 캔버스에 나열된 단어들이 시각적 이미지로 전환돼 '보는'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생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함께 이야기하는 작품은 유쾌한 사유의 세계로 관객들을 이끈다.

권오봉은 거대한 캔버스 위에 역동적인 붓놀림을 보여준다. 형태가 없이 자유롭고 거침없는 붓놀림은 관객들에게 직관적으로 성큼 다가온다. 그 붓의 흔적은 돌연 슬프다, 행복하다, 사랑한다, 괴롭다는 등의 말을 걸어온다. 추상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카타르시스에 도달하는 예술적 승화가 돋보이는 작품이 전시된다.

행위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돌에 구멍을 뚫는 작업을 해온 이기칠 작가는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실존의 의미를 구체화한다. 삶의 의미를 조형적으로 풀어내는 작가는 원형관의 형태로 철을 주조한 조각, 자연석에 구멍을 뚫었던 작업 연작 등을 통해 삶과 작품을 일치시키는 실존주의적 작품을 보여준다.

이교준은 수직과 수평의 선들이 교차하는 작품으로 평면과 오브제를 함께 선보인다. 그는 선과 면을 분할하고 평면 공간을 분할함으로써 구획되어지는 평면 단위들을 보여준다. 이들 선과 면들은 서로 관계를 이루며 독특한 조형을 보여준다. 공간적 거리감과 명암의 대비를 통해 관계성과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다.

독일과 대구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남춘모는 획(Stroke Line)에 관한 작품을 전시한다. 동양적 사고에서 '획'은 서양의 '선'과는 다르다. 작가는 획을 통해 동양미술의 강한 필체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획을 회화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물질로 취급하면서 벽면 위에 설치한다.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선의 나열은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여준다. 특히 선을 투과하는 빛의 여운이 독특한 미감을 선사한다.

박종규는 모눈종이에 인쇄한 사진작품, 그 위에 설치한 비닐이나 종이 등으로 이차원과 삼차원, 그리고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성을 다루고 있다. 최근에 선보이고 있는 노이즈(Noise) 시리즈는 전파에 방해를 받거나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할 때 일그러지는 화면을 화폭에 옮겼다. 이는 의도적으로 선택된 질서에서 배제된 영역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시각적인 시끄러움이 느껴진다.

우리 일상의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대면 때로 생경스러워보인다. 구성수의 '매지컬 리얼리티'(Magical Reality) 시리즈는 동네의 일상적 풍경을 재발견한다. 만화책이 가득 꽂혀 있는 책장, 인형이 가득 쌓여 있는 가게, 관광버스 안의 풍경은 마치 사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일상 속에는 이처럼 다양한 문화적 요소들이 융합된 아이러니한 풍경이 많고, 작가는 이런 이미지를 수거해 현실 풍경을 해학적이고 위트 있게 담아낸다. 모방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정용국은 '뿌리 없는 나무'와 '잠재적 형상' 시리즈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얼핏 보면 훌륭하게 그려낸 한 폭의 동양화다. 매화와 난초가 어우러진 동양화로 보이지만, 사실은 뇌 구조를 수묵기법으로 교묘하게 그려낸 것이다. 작가의 작품 곳곳에 인간의 장기, 즉 뇌, 혈관, 심장 등의 이미지가 숨어 있다.

배종헌은 모두가 떠나고 없는 공간인 방천시장 상해반점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얼룩이 많은 부분은 작가가 드로잉을 가미해 의미심장한 제목을 붙였으며, 얼룩과 낙서로 영상물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재했던 '상해반점'을 중심으로 장소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조형적으로 풀어놓았다. 11월 20일까지 전시된다. 월요일 휴관. 053)790-3000.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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