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웃음이 많은 편이다. 지나가는 사람과도 눈이 마주치면 웃음이 나와 곤란할 때가 더러 있다. 사람 좋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실없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눈짓을 받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여름옷을 준비하기 위해 시내에 나갔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웃음을 보내면 대부분의 주인들도 웃음으로 반겨 주었다. 마땅한 것을 찾지 못해 빈손으로 돌아서도 뒷덜미가 당길 만큼 친절을 베풀었다. 그런데 어느 가게에 들어가 예의 그 헤픈 웃음을 한참 날리고 돌아섰더니 물론 혼잣말이었겠지만 까칠한 말이 뒤따라왔다. "이 아줌마가 왜 실실 웃나. 기분 나쁘게." 나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한 번 더 지으며 총총히 그 가게를 빠져나왔다. 내가 흘린 웃음이, 내가 보낸 시선이 혹시나 그 사람에게는 기분 나쁘게 비쳤나 보다. 나도 그 사람처럼 타인의 웃음과 시선을 곡해한 적이 있다.
어느 휴일 아침, 남편과 집 가까이에 있는 산에 운동을 갔다. 근처의 주민들이 즐겨 이용하는 야트막한 산이었다. 산등성이를 넘고 숲길을 걸어 산 끝자락쯤에 이르렀을 때, 나무로 지붕을 잇고 비닐로 몸을 둘러싼 천막 음식집이 눈에 들어왔다. 문에는 음식 이름을 적은 메뉴판이 붙어 있었는데 '잔치국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목도 컬컬하던 차라 시원한 국물 맛이 시장기를 재촉했다. 호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지폐 세 장이 겨우 끌려 나왔다. 손이 다시 아래 위 주머니를 들락날락거렸지만 동전 하나도 더 찾지 못했다. 국수 값은 한 그릇에 2500원이었다. 남편의 얼굴을 쳐다보니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그도 빈털터리였다.
"한 그릇에 오백 원어치만 더 얹어 달라면 안 될까?" 그 말에 남편은 눈을 껌벅이며 동의했다.
무엇을 드시겠냐며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파전을 굽던 손을 멈추며 함박웃음을 보냈다. 그 웃음에 용기를 얻었다.
"국수 한 그릇에 500원어치만 더…." 순간, 주인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번지며 천막 안의 뭇 시선들이 몰려 왔다. 무안해진 마음에 잠시 앉았던 자리가 가시방석이 되었다.
그날의 묘한 시선에 쐐기를 박겠다는 심정으로 며칠 뒤 그곳을 다시 찾은 우리는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골고루 다 시켰다. 파전이, 두부가, 돼지 껍데기가 차례로 나왔다. 주인아주머니가 마지막으로 국수 그릇을 내려놓으며 한마디 했다.
"지난번에 두 분이 이마를 맞대고 국수를 드시는 모습이 너무나 다정해 보였어요. 얼마 전에 하늘나라에 간 영감이 떠올라서 애를 먹었네요."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주머니의 웃음을 바라보던 내 시선이 굴절되었던 것이다. 함박웃음을 짓던 그 얼굴을 무시하는 시선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마치 시내 옷 가게의 주인처럼.
백 금 태 수필가'초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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