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스마트폰을 가진 바보

입력 2011-08-15 15:42:08

영어에 '스마트'란 단어가 있다. 처음 영어를 배웠을 땐 그 말이 '맵시'있거나 '말쑥한 차림새'를 뜻하는 줄만 알았다. 사실 내가 교복을 입던 시절에는 국내 굴지의 섬유회사에서 생산하는 학생복 이름도 '스마트'였다. 나중에 보니 오히려 똑똑하거나 재주 있는 사람을 가리킬 때 더 흔하게 쓰인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든 '스마트'는 주로 사람을 설명할 때 쓰이는 형용사였다. 왜냐하면 물건이나 기계는 원래가 멍청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록 생각이 없는 바보 기계지만, 그것을 잘 쓰는 사람은 스마트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수천 년 이어져 온 분명한 역할분담이 최근에 와 서로 뒤바뀌고 있다.

요즘 우리가 많이 쓰는 스마트한 기계들을 보자. 행사나 회식 때면 곧잘 이용하는 노래방 기계. 노래만 정하면 반주뿐만 아니라 가사까지 보여준다. 그것도 지나가는 가사 구절에 색깔까지 변하게 해서 박자도 놓치지 않게 도와준다. 기계가 이토록 자상하게 도와주다 보니 요즘은 사람들이 통 가사를 외우질 않는다. 기계가 없으면 아예 노래 부를 엄두도 못 낸다.

어떤 코미디언이 말했다. 남자들은 세 여자의 말은 꼭 들어야 한다고. 바로 엄마, 아내, 그리고 자동차 내비게이션(여자 목소리)이란다. 삼천리 방방곡곡 구석구석을 기계가 다 길을 찾아준다. 이른바 '길의 달인'이라는 택시기사도 내비게이션 말을 듣는다. 길이 막히고 안 막히는 것까지 무선으로 그때그때 알려주니 길의 달인인들 듣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러니 지도를 펼칠 일도 없지만 길을 외울 이유는 더더욱 없다. 어떤 용기 있는 자가 감히 내비게이션 없이 차를 몰고 초행길을 나설까.

아예 '스마트'를 자기 이름에다 떡하니 붙인 거만한 기계도 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얼마나 똑똑하냐 하면 노래방 기계나 교통상황까지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역할은 기본이다. 모르는 노래를 들려주면 제목과 가수를 알려주고, 몇 개 국어로든 번역도 해 준다. 그런데 그런 스마트한 기능이 없는 휴대폰조차 전화번호와 주소록은 기본으로 기억한다. 휴대폰이 있는 우리는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는다. 수첩에다 기록할 이유도 없다. 그러다 보니 친구에게 연락하고 싶어도 자기 휴대폰이 없으면 사방에 전화기가 지천으로 깔려있어도 연락할 수가 없다. 도무지 번호를 모르기 때문이다. 바보가 따로 없다. 기술의 발전은 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한편 살아가는 방식마저 바꾼다. 과연 스마트한 기계를 쓰는 사람들은 스마트한가 아니면 바보가 돼 가는가?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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