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도시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시골지역의 초등학교다. 학생들 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흔히 말하는 조손 가정의 아이들이 많다. 직장관계로 부모와 떨어져 있는 경우도 있지만 가정불화로 어머니가 집을 나가 할 수 없이 떠맡겨진 경우도 많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자식의 끈을 놓지 않으려던 지난날 어머니들의 모습이 아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모정(母情)도 색이 바래는 것일까. 문득 언젠가 지켜보았던 어미 소의 모정이 생각난다.
오빠네는 깊은 산골에서 소를 키우면서 산다. 그곳은 넓은 산자락에 위치한지라 소를 가둬놓지 않고 방목을 하고 있다. 아침이면 우사를 벗어난 소들이 풀을 찾아 산등성이를 향하고 저녁이면 돌아왔다.
그날은 하늘이 구멍이라도 난 듯 장대비가 하루 종일 쏟아졌다. 소들은 폭우에 몸을 피했는지 아니면 넘쳐난 계곡물에 갇혔는지 날이 저물어도 내려오지 않았다. 그 무리 중에는 오늘내일을 다투는 만삭의 몸도 있었다. 할 수 없이 등불을 켠 채 온 가족이 찾아 나섰지만 넓은 산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 갇혀 있었고, 내리붓는 빗줄기와 콸콸 내달리는 계곡물 소리에 소들의 기척조차 들을 수가 없었다.
애태웠던 긴 밤도 잦아드는 빗줄기와 옅어지는 계곡물 소리를 뒤로한 채 물러가고 먼동이 텄다. 창밖이 희붐해질 즈음 만삭이었던 어미 소가 송아지를 데리고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직 양수도 채 마르지 않은 송아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맥 풀린 걸음으로 바들바들 떨며 어미 뒤를 따랐다. 어미의 온몸도 젖어 있었다. 밤새 산고를 치르느라 몸은 지치고 지쳤을 것이다. 밤새 송아지를 핥으며 그 온기로 감싸며 밤이 새기를 기다렸으리라. 폭우로부터 새끼의 몸을 가리는 지붕이 되고, 따뜻이 몸을 녹여주는 이불이 되길 마다하지 않았으리라. 그런 몸으로 걱정스러운 듯 자꾸 뒤돌아보며 바라보는 어미의 눈길에는 업을 수만 있다면 휑하니 업고 달려오고 싶은 마음이 서려 있었다. 그것이 바로 어미의 모정이 아니겠는가.
내 어머니도 그러하셨다. 어머니의 입은 한없이 짧기만 했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음식은 어머니에게는 언제나 맛없는 음식이었다. 돼지고기는 알레르기로, 소고기는 질겨서 싫다며 자식들 숟가락 위에 올려주시던 어머니의 마음을 자식들은 철이 없어 알지를 못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는 어느 시인의 글이 떠오른다.
사람이나 소나 어머니를 부르는 말은 '엄매'다. 그 모정이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비록 자식을 두고 떠난 엄마일지라도 모정은 가슴에서 꿈틀대고 있을 것이다. 세월에 따라 환경에 따라 모정의 색깔과 무게는 다를지라도 '엄매'의 정은 변하지 않으리라.백금태 수필가'초교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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