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도 일단 맛을 봐야 맛있는지 맛없는지 알 수 있듯이 연극도 공연을 보면서 재미를 느끼는 거고 끝난 후에야 비로소 그 재미가 결정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이 말이 궤변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사실이다. 비록 100%는 아니라고 해도 거기에 근접할 만큼은 사실임에 분명하다. 무슨 재료로 만든 음식인지 누가 만든 음식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맛을 보는 즐거움도 있으나 그것들을 상세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맛을 보는 즐거움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몇 번이나 강조하는 말인데 연극도 어떤 면에선 음식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의 수준이 쓰기 전에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좋은 음식 재료에서 좋은 요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듯이 작품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허구를 가미해 만들어진 작품은 그야말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 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사극을 예로 들어본다면 이해가 훨씬 쉬울 것이다.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던 영화 '왕의 남자'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그 영화의 원작은 '이'라는 연극이다. 희곡을 쓴 김태웅 작가는 논문을 쓰듯이 치밀하게 자료를 조사하며 작품을 써나갔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꽤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라는 작품을 쓰는 것이 당시 대학원을 다니던 작가에게는 학교 과제물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진지하게 접근했는지 쉽게 공감이 간다.
어쨌든 그렇게 진지하고 치밀한 사전조사와 취재를 통해 탄생한 작품은 이미 공연 전에 어느 정도 그 수준이 결정되어 있다. 좋은 대본에서는 좋은 작품도 나오고 나쁜 작품도 나오지만 나쁜 대본에서는 나쁜 작품만 나온다는 이야기처럼 연극 작품의 수준이란 것도 누가 뭐라고 해도 일차적으로는 희곡의 수준에서 결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의 입장에서 좋은 연극을 보고 싶다면 먼저, 좋은 희곡을 연극으로 만든 작품을 선택하면 된다. 공연을 보기 전에 이미 작품의 수준이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그러한 선택이 쉽지 않다. 공연되는 모든 작품의 희곡을 읽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창작초연이라고 해서 처음으로 공연되는 희곡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작품을 선택할 수 있을까, 혹은 더 재미있게 작품을 볼 수 있을까.
이 순간 필요한 것이 바로 사전 조사다. 작가에게 필요한 것이 사전 취재이듯이 관객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 즐길 연극을 미리 알아보고 극장을 찾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생략하면 연극의 재미는 어쩔 수 없이 줄어든다. 물론 그 과정을 충실히 거친다면 연극의 재미는 더 커진다. 고전작품이라면 희곡을 미리 읽어보는 등의 과정을 거쳤을 때 자신이 생각한 것과 어떻게 다르게 해석이 되었는지 또는 배우는 어떻게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고 있는지 등 사전 조사를 하기 전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된다. 사실 이러한 것들이 영화를 선택할 때는 어느 정도 하고 있는 것들이다. 시나리오를 읽지는 못한다고 해도 배우나 감독 등에 대해 조사하거나 영화 예고편을 보기도 하고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배우들을 통해 영화에 대해 사전 조사를 충분히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연극을 보러 갈 때는 어떤가. 영화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적은 사전 정보만 가지고 극장을 찾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관객들이 종종 있다. 연극의 작품성은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중간에 객석을 박차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관극을 하기 전에 충분한 사전 조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극도 영화처럼 여가 시간을 즐기는 하나의 문화상품이지만 영화와는 분명히 다른 점들이 있다. 그것들을 알면 알수록 연극을 보는 재미도 커진다. 다른 관객의 평점에만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전 조사를 해서 극장을 찾는다면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재미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연극의 재미는 보기 전에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더 재미있게 연극을 보기 위해 오늘부터 조금만 더 알아보고 극장을 찾아가면 어떨까.
안희철(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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