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만큼 매력적이면서도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말도 드물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사람은 무엇이라도 핑곗거리가 있어야 퇴로를 찾을 수 있는데,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은 최후의 퇴로조차 봉쇄해 버리는 느낌이다.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는 매력적인 말이 사람을 '승자' 아니면 '패자'로 규정하는 아이러니를 포함하는 것이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당연한 이치를 지나치게 외면하는 것 같다.
세상에 날 때부터 개인의 사회적 계급이 정해지는 사회와 식민지, 전쟁과 가난에 찌든 우리 민족에게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은 절실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저 말을 신앙처럼 따랐다. 그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늦은 밤에도 피로한 몸뚱이를 눕히지 않았다. 현재 60대 이상 한국인의 대부분이 그렇게 살았다. 그 덕분에 우리는 오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적어도 성실하기만 하면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정도는 된다. 의식주의 해결이 삶의 절대 목표라면 비참하지만 역사에서 우리 민족이 의식주에서 자유로웠던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너무 멀리 벗어나 버린 느낌이다.
'공부만 잘하면 다 된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마라.'
30, 40대, 더 나아가 50대 부모들이 자식들을 가르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아이들 공부에 방해될까봐 집에서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온 신경을 아이에게 집중시킨다. 아이들은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 한번 내다버리지 않으며, 집안 청소 한번 하지 않는다. 물론 밥도 빨래도 하지 않는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부모의 귀가가 늦으면 음식을 시켜 먹는다. 부모는 뭘 좀 시키려고 하다가도 아이가 '공부하는데요'라고 하면 아이코 싶어 입이 쑥 들어가 버린다.(일반적일 뿐이다.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지는 아이들도 물론 있다.) 그러니까, 네 일은 공부니까, 공부만 잘하면 된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사회 현상은 어쩌면 온갖 집안일에 시달리며 어린 시절을 보낸 40, 50대의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외국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많은 외국의 아이들은 집안일을 거든다. 전적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아이들이야 나라의 총체적 가난 때문이니 논외로 치자. 그러나 집안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비우고, 자전거를 타고 10분 이상 가서 빈병이나 빈 페트병을 현금으로 바꾸어 오는 정도의 심부름은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2배 이상 잘사는 선진국 아이들도 기꺼이 떠맡는다. '공부'가 모든 것을 면책하는 나라는 한국 말고는 없다.
학교 혹은 입시공부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도, 합리적이지 않지만 때때로 따라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도 가르쳐야 한다. 인생이 광고처럼 '생각대로 T'는 아니라는 걸 가르쳐야 한다.
어쩌자고 '네 생각대로 다 할 수 있다' '집안의 쓰레기를 비우는 일은 네 일이 아니다' '공부 말고 딴생각은 일절 하지 마라'고 가르치는가.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공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때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 안 해보는가. 원하는 성적, 원하는 직업을 얻지 못했다고 스스로 실패한 인생이라고 규정하게 해서야 되겠나.
조두진(문화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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