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시작했다. 오랜 경색국면이 끝나고, 대화국면으로 전환하고 있다. 물론 갈 길이 멀다. 우여곡절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화국면이 가져올 풍경의 변화는 적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더 이상 북핵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북한 또한 대외환경 개선을 바라고 있다. 문제는 남북관계다.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비밀접촉을 폭로하면서, 전략적 결별을 선택했다. 우리 정부도 천안함'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사과 없이 움직이기 어렵다. 한반도 주변 정세는 대화로 가는데, 남북관계는 얼어붙어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도 국면을 전환해야 한다. 광복절 경축사가 중요한 계기다.
8'15는 광복의 기쁨이면서, 또한 분단의 아픔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역대 정부의 광복절 경축사는 통일문제에 대한 중요한 제안을 담아왔다. 박정희 정부는 1970년 국제적인 데탕트 국면에서 남북한의 선의의 경쟁을 제안했다. 1988년 노태우 정부,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초기에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 제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광복절 경축사는 통일방안을 제안하는 기회다. 전두환 정부 시기였던 1982년에는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을 제안했고, 1994년 김영삼 정부에서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안했다. 그리고 중요한 외교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다. 1988년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의 필요성을, 2003년 노무현 정부는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역대 정부의 광복절 경축사는 남북관계 수준을 반영한다. 접촉이 없을 때, 제안은 일방적이고, 추상적이었다. 상대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통일방안 발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풀어야 할 시점의 제안은 상대를 인정하고, 구체적이며, 설득력이 있었다.
이번 광복절 경축사를 국면 전환의 계기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다음의 세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북한이라는 상대에게 말해야 한다. 물론 대북정책의 청중은 우리 국민도 있고, 북한도 있으며, 국제사회도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과도하게 국내 정치적 관점이 우세했다. 여론은 물론 북한에 비판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한반도 정세를 관리할 책임이 있다. 이념이 아니라, 실용을 선택할 시점이다. 북한을 상대로 말한다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의 접점을 제시하며, 실현가능한 제안을 하라는 뜻이다.
둘째, 상대의 진정성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대화의 의지가 있는지를 묻지 마라.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는 것도 능력이다. 북한이 남쪽을 제치고 미국과 통한다는 '통미봉남'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는가? 한반도 정세는 남북관계가 핵심이다. 남북관계 없이 6자회담이 제대로 되겠는가? 남북관계를 안정시키고, 북핵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줄 때다.
마지막으로 협상의 결과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사과는 대화를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성과다. 그것을 전제조건으로 주장한다면, 대화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 핵문제도 마찬가지다. 협상의 과정을 통해 북한의 핵 능력을 동결'폐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의 선의를 기다릴 만큼 한반도 정세가 한가롭지 않다.
올해 8'15 경축사는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임기 마지막 해인 내년은 관리해야지, 의욕을 보이기 어렵다. 결국 북미 양국이 대화를 시작하고,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는 현재의 시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고려해야 할 변수가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한 가지다. 바로 역사적 평가다. 먼 훗날 이명박 정부 시기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가? 그 점을 생각할 때가 되었다. 북핵문제 해결의 외교적 역할을 잃고, 북한을 중국에 잃어버린 정권으로 평가받고 싶은가? 물론 북한의 책임이 크다. 그러나 역사는 정부가 그런 상황에서 선택한 전략의 결과를 물을 것이다.
시간은 충분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여전히 가장 빠르다. 하반기의 남북관계가 달라지기를 바란다. 지혜를 묻고, 공감을 모아서, 대북정책을 전환할 시점이다. 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는 동북아 질서에서 소외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런 심정으로 광복절 경축사를 기다린다.
김연철(인제대 통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