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잡을 비책은 '평정심'
1990년 준플레이오프서 빙그레 이글스에 2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안착한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의 사기는 높았다.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9회말 동점 홈런과 역전 홈런을 연거푸 터뜨리며 일군 역전승의 감격은 '큰 경기에 약하다'는 징크스에서 조금씩 벗어나며 자신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83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성적은 9승1무23패. 전년도엔 준플레이오프서 태평양에 1승2패로 주저앉는 수모까지 겪었던 삼성이었다. 86년 OB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단 한 차례밖에 이겨보지 못했던 삼성은 적지에서의 2연승에 흥분했다.
그러나 축배는 잠시 미루기로 했다. 한국시리즈 진출까지는 세 번의 승리가 더 필요했다. 더욱이 플레이오프 상대는 해태 타이거즈였다.
85년 통합우승을 빼면 최고 정상자리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한 삼성이었던 반면 해태는 83년 우승을 시작으로 86년부터 89년까지 한국시리즈 4연속 우승을 달성한 최고의 팀이었다. 더욱이 삼성은 86년과 87년 해태와 한국시리즈서 두 차례 맞붙었지만 1승4패, 4패로 딱 1경기를 이겨봤을 뿐이었다.
그런 해태가 5연속 우승의 길목에서 삼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90년 정규시즌서도 삼성은 해태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삼성은 4위, 해태는 2위였고 상대전적서도 7승13패로 삼성은 절대적 열세를 면치 못했다. 정규시즌서 삼성과 해태는 팀타율 0.263대 0.270, 평균자책점 4.13대 3.36. 더욱이 해태에는 무등산 폭격기로 불리는 선동열이 마운드를 지키고 있었다.
여러 정황에 야구전문가들과 타 팀 관계자, 야구팬들은 해태의 낙승을 전망했다. 신문과 방송은 '삼성이 해태 징크스에서 벗어날 것인가'를 주목하며 플레이오프의 관심 불러일으키기에 나섰지만 이미 승자는 해태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의견은 달랐다. 그는 "플레이오프가 모든 사람들의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을 것이며 삼성은 해태를 깰 비책을 갖고 있다"고 큰소리쳤다. 삼성의 정동진 감독이었다. 하지만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빅 매치를 앞두고 으레 기죽지 않으려 내뱉는 감독의 허풍(?)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정 감독은 자신만만했다. 그가 꺼낸 비책은 '평정심'이었다. 정동진 전 삼성 감독은 "당시 매스컴까지 해태가 최고라고 외쳤다. 그 말에 동의한 삼성은 스스로 주눅이 들어 있었다. 코치 시절 동안 김영덕, 박영길 감독은 해태전에 앞서 너무 예민했다. 삼성의 장점을 뒤로하고 해태의 빈틈 찾기에만 열중했다. 산더미처럼 자료를 찾고 분석했지만 호랑이 앞에선 번번이 꼬리를 내린 사자가 됐다. 90년 플레이오프를 앞뒀을 때도 구단 안팎의 시선은 삼성은 개미, 해태는 무적함대였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이전 감독들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해태전을 준비했다. 당장 코칭 스태프에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특별훈련도 하지 않았고 경기 보름 전부터 전력강화를 한다며 시행하던 합숙일정도 잡지 않았다. 정 전 감독은 "평소대로 연습하고 연습이 끝나면 선수들을 집으로 보냈다. 아무래도 집 밥을 먹는 게 더 편안하지 않을까. 이런 조치에 프런트는 당황했고 놀라기는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되풀이했던 말은 평소대로 편안하게 일전을 준비하자였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서도 정 감독은 "우리가 광주에 온 건 승리하기 위해서다. 해태도 약점이 많다"며 또 한 번 큰소리를 쳤다.
90년 10월 13일 광주구장. 플레이오프의 향방을 가를 1차전에서 정동진 감독은 신인 이태일을 선발오더에 이름을 써냈다. 선동열과 이강철을 저울질했던 해태는 이강철을 선택했다.
이전까지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 팀은 100%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 중요한 경기서 89년 말 입단해 데뷔 첫해를 맞은 이태일에게 중책을 맡긴 정 감독의 판단에 사람들은 고개를 흔들었다. 삼성엔 89년 14승, 90년 13승으로 2년 연속 10승을 거둔 김성길이 있었지만 정 감독은 예상을 깨고 90년 13승6패 평균자책점 3.50으로 맹활약했지만 큰 경기 경험이 전혀 없는 신인 선수를 마운드에 올린 것이었다.
해태는 헛웃음을 지었다. '삼성이 지레 포기 하는 구나'라고 여긴 건 관중도 마찬가지였다. 해태에 약했던 전력에다 1차전 선발의 무게까지 해태로 기울면서 "승리를 자신한다"던 정 감독은 허풍쟁이로 전락할 위기에 몰렸다. 당시를 떠올린 정 감독은 "김성길은 에이스였지만 담이 약했다. 이태일은 겁 없는 신인이었고 당시 구위가 가장 좋았다. 더욱이 해태는 옆구리(사이드암) 투수에 약했다"며 선발 기용에 세심하게 신경을 썼던 점을 강조했다. 이강철을 예상했던 정 감독은 2번과 8번 타순에 왼쪽 타자 홍승규와 이현택을 배치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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