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通] 최장수 대구지방법원장 퇴임 황영목 변호사

입력 2011-07-30 08:00:00

첫 사형판결 날 눈이 펑펑… "왜 내가 이런 명령을 내려야 하는지…"

15년 동안 야생화를 사랑해 온 황영목 전 대구지방법원장이 자신이 아끼던 필름 카메라를 들고 와 사진 찍을 때 모습을 연출했다.
15년 동안 야생화를 사랑해 온 황영목 전 대구지방법원장이 자신이 아끼던 필름 카메라를 들고 와 사진 찍을 때 모습을 연출했다.

"한 번만 봐 주세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두 차례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정중한 거절을 이렇게 표현했다. 역대 최장수 대구지방법원장(3년 3개월, 2위는 2년 10개월 남짓)과 대구고등법원장(1년)을 역임하고, 명예롭게 퇴임한 황영목(60) 변호사(지난해 2월 개업)가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인터뷰에 응했다.

퇴임 후 서울의 유력 일간지와 주간지 등이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도 역시 '한 번만 봐달라'는 전략으로 나름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하지만 매일신문의 거듭되는 요청에 이젠 화답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나보다. 막상 인터뷰에 응하기로 한 뒤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왕 하기로 했으니 화끈하게 인터뷰에 나선 것이다.

이달 25일 대구 수성못유원지 인근 식당에서 기자와 인터뷰 겸 저녁 약속을 했다. 그리고 '꽃분이'라 불리는 평생의 배우자도 함께 왔다. 본명은 진영석(58) 씨. 30년 넘게 서로 이해하며 살아온 부부답게 정겨운 모습이다. 부인과 함께 진행했던 인터뷰라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웠다. 가끔씩 기억이 가물가물하거나, 사진 자료 등이 필요할 때는 꼼꼼한 비서실장처럼 옆에서 도와줬다.

마침 식당 주변에 정원이 있었다. 잡초 같지만 야생초처럼 생긴 풀들도 곳곳에 피어있었다. 사진찍기에 좋은 장소였다. 평생을 법조인으로, 그것도 그 공직생활의 대부분을 대구경북에서 판사로 지내다 이제 변호사로 인생 2막의 무대에 오른 그의 삶을 조금 들여다봤다.

◆현산(炫山)의 야생화 사랑

황영목 변호사의 호는 현산이다. 빛날 현(炫)에 뫼 산(山). 지역의 유명한 서예가가 지어준 호다. 현산의 평생 취미는 야생화 사진을 찍는 것이다. 쉽사리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취미생활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야생화에 대해 이처럼 이해도가 높고, 필름으로 찍은 진귀한 사진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야생화에 대해 물을수록, 더 빠져들었다. 대략 알아낸 사실들만 얘기하면, 황 변호사가 꽃이나 식물에 대한 책만 1천 권을 갖고 있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최고의 야생화 사진만을 골라 만든 '현산의 야생화 100선'이라는 세상에 10권뿐인 앨범 형태의 책도 냈다. 마침 부인이 그 책을 집에서 가져왔는데, 그 수준이 사진기자가 보기에도 대단할 정도였다. 이 소중한 야생화 앨범은 가족들과 법원에 있을 때 인연을 맺었던 2명만이 가지고 있다. "어디 세상에 자랑할 거리는 아니죠. 제 소중한 취미일 뿐이죠."

겸손 속에서 야생화 사랑에 대한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야생화에 대한 사랑은 체력단련과 정서순화를 위해 시작한 등산에서 비롯됐다. 15년 전 산행 길에서 나무와 풀꽃을 수없이 만나지만 정작 그 이름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닫고 그때부터 주말이면 부인과 함께 산행 겸 야생화 관찰에 나서게 된 것이다. 대법원장이 대구에 오는 일 등을 제외하면 거의 매주 아내와 함께 야생화를 만나러 곳곳을 누볐다.

그렇게 시작된 야생화 사랑은 10년 넘게 이어졌다. 35㎜ 슬라이드 필름만으로 약 6천 점의 작품을 찍어 소장하고 있다. 3년 전 부터는 연초에 지인들에게 야생화 탁상 달력(12장 짜리)을 제작해 나눠주고 있다. 법원장 재직 때는 분기별로 친절'모범 공무원 포상 수여식 때 종전에 주던 시계 대신에 직접 촬영한 야생화 사진 액자를 부상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제가 괴짜는 아니고 야생화를 조금 깊이 사랑한 건 맞겠죠. 그렇다고 제 본업을 잠시라도 등안시 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말에 골프나 다른 취미 대신에 전 야생화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죠. 15년 동안 운전기사, 간식담당, 조명기사, 소품담당 등 1인 4역을 하며 함께해 준 아내에게 감사해요."

◆사형 폐지론자인 황 변호사

"저는 사실 사형 폐지론자입니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형벌은 반드시 주어져야 합니다. 사실 인간이 인간에게 사형을 선고한다는 것이 판사라고 하지만 하기 힘든 결정입니다. 그렇지만 피해자 가족 등을 생각하면 사형이 아니더라도 그에 응분한 벌을 내려야 합니다."

2시간 30분 동안 했던 얘기들 중에 야생화 외에 아주 '임팩트' 있는 얘기가 있었다. 바로 사형선고에 관한 것이었다. 조금은 놀랄 만한 일이었고, 아직도 당시의 기억을 생생하게 하고 있었다. 바로 18년 전 대구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덕동 모자 피살사건이었다. 1심 판결을 맡았던 그는 판사 생활 처음으로 사형선고를 내렸다. 이 범인은 이 모자뿐 아니라 다른 여성 1명도 살해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항소심인 2심 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그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이 범인이 무죄로 출소돼,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당시 지역 언론에서도 1심 사형, 2심 무죄 판결이 난 이 사건에 대해 과연 대법원에서는 어떤 판결을 할지 큰 관심을 보였다. 역시나 1심 판결대로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이 살인범은 지금도 대구교도소에 있다고 한다. "당시 제가 첫 사형선고를 내리던 날, 법원 창밖으로 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는 사실이 싫었습니다. 그것도 제가 그 순간에 명령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이후 고등법원에서 근무할 때도, 1심에서 사형선고가 난 판결에 대해 사형판결을 내린 바가 있다. 이때는 1심 때 사형선고를 내렸을 때보다는 마음의 부담이 적었다고 했다. 황 변호사가 이 얘기를 길게 할 때는 사형제도에 대한 그의 깊은 고민을 읽을 수 있었다.

황 변호사의 법조인 생활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경북 경주시 내남면 덕천리에서 태어나 경주중학교-경북대사대부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18회 사법시험(연수원 8기)에 합격해 1978년 부산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그리고는 지역에서 판사로서 신념과 열정을 갖고 근무하다 퇴임했다. 지금은 그냥 변호사다. 전화하면 이렇게 말한다. "네! 황 변호사입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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