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판사생활 끝 터득한 한 마디 '역지사지'

입력 2011-07-30 08:00:00

30여 년 전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두 손을 꼭 잡은 황영목 전 대구지방법원장과 아내 진영석 씨.
30여 년 전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두 손을 꼭 잡은 황영목 전 대구지방법원장과 아내 진영석 씨.

기분 좋았다.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해 준 것도 고마운데 완벽한 준비에 무장해제까지 하고 나와준 것이다. 혹시나 기자가 구체적으로 알기 힘든 부분이 있을까 봐 3쪽 분량으로 '야생화 사랑'에 대한 요약본까지 정리해서 줬다. 취재수첩에 적을 게 없었다. 재미나게, 맞장구치며 듣기만 하는 것이 기자의 일이었다. 그래도 궁금증이 동했다. 그래서 다짜고짜 물었다.

-30년 넘게 판사 생활을 한 뒤 남긴 퇴임사는.

▶네. 많은 고민 끝에 이런 말을 했어요. 판사가 죄인처럼 죄를 저지를 수는 없지만 항상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고, 상대를 배려하려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라는 말과 함께 언제나 긍정적 사고를 가질 것을 후배들에게 당부했습니다. 지금 하라고 해도 똑같은 말을 해줄 겁니다.

-깊은 경험과 넓은 상식을 항상 강조하는 이유는.

▶판사든 공무원이든 기자든 모든 경험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책을 많이 읽고,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세계관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법률가는 간접 경험을 통해 생각을 넓히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건전한 상식도 필수 덕목이죠.

-혹시 자녀들도 법조인인가요.

▶(이 질문에는 아내가 대신 답했다) 아들 1명과 딸 1명 있는데, 아들은 독일에서 금속공예를 하고 있습니다. 공부를 잘 했는데, 예술 쪽에 재능이 많은 것 같아 아들이 원하는대로 직업을 선택하도록 도와줬습니다. 딸은 이화여대 법대를 나와 기업체 법무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둘 다 출가해 손자, 손녀도 1명씩 있답니다.

-지난해 6월에 모친상을 치렀는데 어머니는 어땠나요.

▶우리 5남매를 잘 키워준 분이지요. 참 검소하고 소탈한 분이었습니다. 집에서 농작물을 수확해서 자식들에 나눠주고 나며 남은 것은 시장에 들고나가 헐값에 팔 정도였습니다. 또 평생 한 번도 아들이 판사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하지 않을 정도로 평상심이 마음에 밴 분이지요.

-겨울에는 야생화가 없는데, 어떻게 하시나요.

▶(이 질문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줄줄 얘기가 나왔다. 스마트폰에서 그동안 찍은 경주 감실불상과 경덕왕릉 등의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야생화가 피지 않는 계절에는 탑이나 불상 등 문화재를 찍으며, 문화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도 찍습니다. 이 사진들도 매력적입니다. 아주 친한 네 부부가 함께 떠나는 사진 여행도 제 삶의 청량제입니다.

권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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