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그해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자본주의 기반을 착실히 다져가고 있는 대한민국 앞에 '외환위기'라는 재앙이 닥쳤다. 고(高)물가, 고실업, 고환율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외환위기라는 말은 국민들에게 생소했다. 전대미문의 경제난이 터진 것이다. 외환 곳간이 텅 비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뒤였다.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한국의 외환 보유 규모에 대해 "외환 보유고 250억 달러는 아시아의 금융위기에 맞서기에 충분한 규모"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몰랐고, 곧 밝혀진 사실은 한국이 외환 보유고를 갖고 돈놀이를 했다는 것이었다. 즉 한국은행은 보유한 외환 대부분을 몰래 팔거나 시중 은행들에 빌려줬고, 이것이 악성 부채가 됐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1급 보좌관이 한국은행에 전화를 걸어 "외환 보유고를 왜 풀지 않느냐"고 묻자 한은 측은 "하나도 없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한국이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이렇게 IMF 체제는 시작됐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 작업이 이루어졌다. 원화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폭락했다. 한국뿐이 아니었다. 태국,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일대가 공황 상태에 빠졌다. 당시 그런 사태의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조지 소로스였다. 그는 세계적인 국제금융가로 '헤지펀드 업계의 대부'였다.
그런데 IMF 체제에 순종했던 한국과 전혀 다른 시각을 보인 나라가 말레이시아다. 마하티르 총리는 외환위기의 원인은 조지 소로스를 비롯한 투기성 단기 자본의 장난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소로스를 외환위기의 주범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IMF식 처방을 따르지 않았다. 마하티르는 IMF 구제를 받지 않고 고정환율제 도입, 주식이나 국채'부동산 매각 시 매각 대금의 해외 송금을 금지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자본 통제 정책을 실시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외환위기를 막았다는 평을 들었다.
마하티르는 미국식 세계화와 자본주의를 비판해 온 아시아 지도자 중 한 명이다. 따라서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조지 소로스는 늘 그의 입방아에 올랐다. 그런 소로스가 최근 펀드 업계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그린스펀은 은퇴 후 '격동의 시대'에서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의 비화를 밝혔다. 공직자가 아닌 투자자로서의 소로스는 할 말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의 '입'을 기대해 본다.
윤주태(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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