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들 사기 높이도록 노력할 터
1977년 4월 1일. 대구시 북구 원대소방파출소(현재 노원119안전센터)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원대시장 가구골목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돼 출동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평소처럼 소방장비를 챙겨서 출동준비에 여념이 없는 소방관들 사이에서 두 명의 신참 소방관은 눈만 멀뚱멀뚱 껌뻑이면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다가 호된 질책을 받는다.
"야! 뭐 해? 곡괭이랑 도끼 챙겨서 출동차 타!"
두 소방관은 이날이 소방관으로서 첫 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얼떨결에 소방차에 매달려 화재현장에 도착했다. 화재현장은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하늘을 삼킬 듯한 기세로 타오르는 불길을 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소방관들 사이로 '제발 우리 아이를 살려 달라'는 어머니의 절규와 목 놓아 우는 상인들의 외침까지 마구 뒤엉켜 있었다. 이날 두 신참 소방관은 처음으로 소방관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직업인지 알았다.
이달 22일 현직 소방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소방방재청장에 임명된 대구 출신 이기환(56) 소방방재청장이 소방관 입문 첫날 겪었던 일이다. 이 청장은 그날의 기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현장에서 우왕좌왕하기만 했다는 이유로 그날 저녁에 선배들에게 많이 혼났습니다. 소방관들에게 교육과 훈련, 그리고 충분한 휴식이 왜 중요한지를 깨달았지요. 개인적으로는 그날부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소방관으로 제대로 일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지요."
이후 이 청장은 소방간부시험에 합격, 본격적인 소방간부의 길을 걸었고 22일 후배 소방관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제5대 소방방재청장에 취임했다.
취임 후 이 청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이 충남 천안에 있는 중앙소방학교 내 소방충혼탑을 참배한 것이다. 화재와 재난현장에서 국민들의 목숨과 재산을 구하다 유명을 달리한 선배 소방인들에게 취임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소방충혼탑에는 지난 1986년 한 화재 현장을 지휘하고 사무실로 돌아온 뒤 순직한 이 청장 부친(고 이극의 전 구미소방서장)의 위패도 모셔져 있다.
이 청장은 "소방방재청장 임무를 누구보다 성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이유가 남들보다 더 있는 셈"이라며 "소방방재청 조직이 하나가 되고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소방관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아들까지 3대(代)가 소방공무원이다. 이 청장의 아들도 뒤를 이어 강원도에서 소방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 청장은 "손자가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소방공무원이 되고 아들이 소방조직의 수장에 오른 모습을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라면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1955년 대구시 남구 대명동 영선시장 근처에서 4남1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이 청장이 어린 시절엔 영선못이 현재의 영선시장과 영선초교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영선못에 빨래하러 나오시는 어머니를 쫓아 나와 물놀이를 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대구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부친의 임지를 따라 여러 차례 이사를 다녔다. 그러나 이 청장은 자신의 고향은 부친의 고향인 청도군 강남면 옥산리(대산)로 여긴다.
그는 요즘도 부모님의 산소를 모신 '고향마을'을 일 년에 네댓 차례 찾는다. 그는 변함없이 소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고향의 모습에 늘 힘을 얻는다.
이 청장은 지방의 소방방재 시스템과 관련 인력충원이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소방인력으로는 양질의 국민서비스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청장은 국민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재난에서 도움을 주는 등 실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방관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당부했다.
그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우리 사회 모든 곳의 개발속도를 높이고 있다"면서 "IT강국인 대한민국의 소방방재 수준은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 청장은 대구경북지역 소방'재난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소방방재가족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도 빠뜨리지 않았다.
"불철주야로 지역의 재난관리 현장을 누비고 있는 소방공무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국민들의 기대와 성원이 어느 때보다 큰 만큼 주어진 임무에 더욱 더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의 근무환경개선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테니, 여러분들은 지역민들이 보다 편안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더 꼼꼼하게 주변을 챙겨주시길 바랍니다."
이 청장은 김천 서부초, 경상중, 영남고, 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한 후 경북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학위, 대구대에서 지역사회개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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