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는 많은 시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달 1일 시내버스 요금을 인상했다. 요금 인상 뒤 나빠진 여론을 무마하려는 듯 시내버스 서비스 확대방안을 발표했다. 시내버스 운행정보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아마도 대구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선택한 것 같다. 최선의 방안을 선택했다고 보는 데는 다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얼마 전 '시내버스 요금 인상 이후의 개선 과제는?'이라는 주제로 모 방송의 토론회에 참석했다. '시내버스 요금 인상 이후에 시내버스는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구시 대중교통과장은 시내버스 기사들의 친절도를 높이는 등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말했고 대구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은 친절 선포식을 하는 등 역시 서비스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일면 대구의 무뚝뚝함을 생각하면 필요한 일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시내버스 기사가 친절하다고 자가용을 타던 시민들이 시내버스를 타고 싶어질까?
예를 들어 어떤 식당에 가면 종업원들은 끝내주게 친절한데 음식 맛이 형편없다고 하자. 혹은 내가 다니는 학원의 강사가 늘 웃으며 친절하게 대하지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다고 하자. 아마 이런 식당이나 학원은 대부분 문을 닫게 될 것이다. 허름하지만 음식 맛이 좋으면 외진 곳에 있는 식당이라도 손님이 넘쳐나고 강사의 실력이 출중하면 학원은 수강생들로 넘쳐난다. 사람들이 식당과 학원을 찾는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시내버스는 교통수단이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이유는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도심에서 자가용을 이용하면 빠르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시내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는 속이 터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민들이 시내버스를 이용하다보면 너무 느린 속도에 화가 난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특히 낮 시간에 볼일을 보려고 타면 도착 시간을 가늠하기 힘들다. 신호를 일부러 받고 가기도 하고 느림보 운행을 하며 뒤차에게 양보하기 일쑤다. 어떻게 대구사람의 정신으로 저렇게 태평스레 운전을 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배차간격은 또 어떤가? 자주 오는 버스는 너무 자주 오고 기다리는 버스는 너무 한다 싶을 정도로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시내버스 운행대수를 줄여서 배차 간격이 더 벌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친절교육을 대책으로 내놓는 정책담당자와 운영책임자를 보며 대구 대중교통의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 시내버스 이용 만족도를 높이고 승객을 늘리는 방법은 빠르고 편리한 고급 교통수단으로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 단순한 해결책을 접어두고 다른 길을 찾으니 문제는 꼬일 수밖에 없고 밑 빠진 독에 돈은 한정 없이 들어가게 된다.
이러다 보니 돈 쓰고 욕먹게 된다. 그래서 차라리 욕이라도 먹지 말자고 낸 방법이 시내버스 요금 인상이다. 겉으로 내세운 이유는 수익자 부담원칙이다. 시내버스 요금이 현실성이 없으니 올리겠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타당한가? 가령 도시에서 도로공사는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누가 지불하고 있는가? 수익자 부담원칙을 적용한다면 자가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도로를 다니며 통행세를 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내년 8월부터 국우터널을 무료화 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었고 범안로 무료화의 목소리도 높다. 자가용에 대해서는 수익자부담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시내버스에는 적용하겠다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필자는 이런 논란의 핵심이 공공재에 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공공재와 민간재는 소비로부터의 배제성 여부와 소비의 경합성 여부로 구분된다. 시내버스의 경우 공공의 개입이 없다면 소비자로부터 배제당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늘어난 자동차로 도로에 혼잡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소요된다. 그리고 시내버스에 돌아가는 혜택은 다수의 개인들이 공동으로 소비하는 특성을 갖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도로와 마찬가지로 시내버스도 공공재다. 준공영제는 이렇게 공공재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기형적인 제도다. 기형적인 제도라고 단정한 이유는 전국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시내버스 요금 인상 이후에 대구시는 기형적인 준공영제의 틀을 전환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지 친절 운운할 때가 아니다. 불안정한 국제유가로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체계를 구축할 외부적 조건은 형성되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예산을 쏟아 붓더라도 시내버스를 제대로 운영한다면 사람들은 칭찬할 것이다. 도시철도 건설 예산의 10분의 1이면 시내버스를 빠르고 편리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공공재로서의 성격이 갈수록 강해지는 시내버스를 제대로 봐야 한다.
안재홍(대구녹색소비자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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