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창석의 뉴스 갈라보기] 북 치는 소년들

입력 2011-07-23 07:33:13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미 10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문예비평가 게오르크 루카치가 쓴 '소설의 이론' 서두에 나오는 저 아름다운 문장은 여전히 독자를 설레게 한다. 물론 저 '별'은 삶과 예술이 합일되었던 고대 그리스시대를 지칭한 것이지만, 부박한 현대인들에게도 벅찬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인간의 본성은 그토록 자연과 동화되기를 원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별'을 바라보는 행복을 누리기는커녕 미친 듯이 질주하는 열차에 탄 것처럼 살고 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끝 모를 경쟁 속에 뛰어든다. 무엇을 위한 경쟁인지도,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로 말이다.

우리에게 이런 무참한 경쟁을 수상쩍게 여기는 시기가 있다면 아마 청소년기가 아닐까 싶다. 청소년들은 기성사회에 편입되지 않은 탓에 쉽게 의문을 달 수 있고, 자신의 성정과 맞지 않으면 항거라도 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 항거의 모습을 살피고자 한다. 그렇다! 어느 시대든 반항하는 청소년들이 득실대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그들의 반항은 마치 무한경쟁의 수상한 배후(背後)를 지목하는 듯한 통찰력이 가미된 행위처럼 보이는 것이다. 매일같이 포털 사이트의 뉴스를 메우다시피하는 아이들끼리의 폭력, 교사와의 불편한 관계, 이탈된 성(性)의 문제 등, 상상의 한계를 거의 넘어서고 있다. 이런 사태가 무자비한 경쟁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고 누가 단언하겠는가. 청소년이야말로 시대의 명료한 거울이 아닐는가.

금년 들어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청소년들의 정서를 순화시키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또한 최근에는 한 기업이 나서서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통해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면역력을 높이게 하는 '세로토닌 드럼클럽'을 개설했다고 한다.

교과부나 기업 지원의 '세로토닌 드럼클럽'은 모두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엘 시스테마'를 모델로 삼고 있다. 1975년에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라는 경제학자가 마약과 범죄에 노출되어 있는 도시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악으로 정서를 안정시키기 위해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이후 '엘 시스테마'는 엄청나게 번성하여 현재 자국에서 수백 개의 청소년 오케스트라가 생겼고, 세계 청소년 음악 운동의 좌표가 되고 있다.

최근 대구에서도 '엘 시스테마'를 모델로 하는 '세로토닌 드럼클럽'이 5개의 중학교에서 결성되었다. 베네수엘라에서처럼 오케스트라가 아닌 타악기 중심의 드럼클럽이라고 한다. 모임을 주도적으로 기획한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의 말에 의하면 타악기가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데 가장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시형 박사는 '세로토닌하라!'라는 자신의 책에서,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잘못 알려진 엔도르핀 역할을 비판하고 균형 잡힌 삶으로 '세로토닌'적인 가치를 거론하고 있다. 뇌신경물질인 엔도르핀은 열정적이고 호기심이 강렬할 때 분비되지만 금단현상의 고통을 안겨주는 반면, 세로토닌은 감정을 조절해주며 행복을 느낄 때 분비되는 평화로운 신경물질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세로토닌이 충분히 배출되도록 사는 것이 옳다는 얘기다.

신경과적으로야 어떻든 청소년들이 유쾌하게 북을 두드리면서 스트레스를 벗어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 이것을 후원하는 기업도 향후 전국 100개의 학교에 드럼클럽이 설립되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민간기업과 전문가 개인이 청소년 문제 해결에 뛰어든 것은 아름답고 놀라운 일이다.

이쯤 되니까 슬며시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세로토닌 드럼클럽'이 타악기를 중심으로 해서 정서순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처럼 다른 분야의 예술도 이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술이나 문학도 활용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세로토닌'을 배출하는 요령이 될 것이다. 예술만 아니라 농구, 축구, 탁구, 배드민턴 같은 운동클럽도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겠다.

루카치의 말처럼 '별'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해도 우리 영혼은 '별'을 그리워한다. 우리 속에 내재된 행복에 대한 갈증은 참으로 기민해서 누군가가 틔워주기만 하면 이내 꽃처럼 활짝 피어날 것이다. 청소년이라면 더욱 그렇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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