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비어서 충만한 아름다움

입력 2011-07-22 11:06:45

장옥관(시인 계명대 교수)

그리스 여행을 앞두고 있다. 몸담고 있는 학술단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요즘 어쩌다 국가 부도 사태에 몰릴 정도로 형편이 딱하게 되었지만 그리스는 결코 만만하게 볼 나라가 아니다. 유럽 문학의 뿌리인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 하드커버의 책에나 어울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유명사 앞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주눅 들었던가. 코발트 빛 에게해에 흩어져 있는 산토리니와 낙소스, 크레타 섬은 이름 그 자체로도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하지만 그리스의 자랑은 누가 뭐라 해도 신전 건물들이다. 파르테논과 아폴론, 포세이돈 신전 등에 서려 있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화적 상상력은 말 그대로 서구 문학과 예술의 원류가 아닌가. 그런데 사진을 들여다보니 제대로 된 건물은 거의 없고 기둥만 남아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폐허이기 때문에 더 신전다운 게 아닐까 싶다. 생각해 보라, 손자손녀 다 본 할머니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주름살 하나 없이 팽팽하다면 얼마나 그로테스크할 것인가. 폐허는 그 자체로 신화를 재생하고 완성시킨다.

얼마 전에 들렀던 경주 황룡사지에서도 이런 느낌이 들었다. 황룡사지는 빈터이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어떤 이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관광 경주의 핵심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천마총처럼 거대한 왕릉에서 왕도 경주의 매혹을 찾는다. 그러나 나는 빈 공간의 황룡사지야말로 가장 경주다운 장소라고 여긴다.

왕국의 기운이 한창 뻗어나가던 6세기 중반 신라는 다운타운에 해당하는 곳에 황룡사를 짓고 100년 뒤에 당시 기술로는 불가사의한 아파트 27층 높이(80m)의 구층 목탑을 건설했다. 이 건물은 불국토를 꿈꿨던 신라인의 염원이 구체화된 상징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은 주춧돌만 남아 있는 상태다. 폐사지의 황량함을 아쉽게 여길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절의 진정한 모습은 건물이 사라진 절터가 아닌가 싶다. 주춧돌만 남아있는 빈터에서는 우리의 상상력이 감당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주춧돌 위에 앉아 보았다. 고요가 붐비는 소리, 별들의 운행이 내는 아름다운 음악이 들렸다. 이것이야말로 비움으로써 충만해지는 경우가 아닐 것인가. 여기에선 부처님의 공의 가르침도 속속 머릿속에 들어올 듯하다.

생각해 보면 만상은 빈자리가 원래 모습이다. 어떤 고명한 스님의 이야기다. 어린 상좌가 큰스님이 애지중지하는 다기를 깨뜨리고 말았다. 겁에 질린 상좌가 죽을죄를 지었다고 머리 조아렸더니 큰스님의 말씀이 '그래, 그릇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구나' 하더라는 것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형상들은 모두 잠시 머물렀다 사라질 것들이다. '나'라는 확고부동한, 도무지 부인할 수 없는 나의 생각조차도 실은 빈자리에 불과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의 머릿속에 들어앉은 온갖 요상한 생각들은 누가 언제 지어 심어 놓은 것일까. 태어날 때는 분명 아무 생각이 없었을 터인데 말이다.

주춧돌만 남아 있는 경주 황룡사지에서 빈자리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지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생각해 본다.

시인 장석남은 '경주 황룡사터 생각'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주춧돌들 나란히 나란히 무릎 꼭 오그리고 제자리 앉았는 자리마다/ 하늘도 그 주춧돌의 하늘로서 하나씩 서 있었습니다./ 주춧돌 하나하나마다 앉아서 한 시간쯤씩/ 아니 하루쯤씩 앉아 있어보고 싶었습니다." 구층 목탑 64개 주춧돌마다 하루씩 앉으려면 두 달은 족히 걸릴 터인데 정말 아무 일 하지 않고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시인이다. 쓸모 있는 것만 추구하는 세상에서 기어코 쓸모없는 것만 좇는, 그리하여 스스로 이 세상에서 저를 소외시키려는 자가 시인이 아닌가. 객쩍은 소리 그만두고 늘 쓰잘데없는 생각만 하는 시인의 소견으로 생각해 보거니와, 2017년에 구층 목탑을 복원한다는 그 계획, 정말 옳은지 함께 따져봤으면 좋겠다.

장옥관(시인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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