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성' 인천서 느끼는 활력 고향에서도 느껴봤으면…
"고향마을 칠곡리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고향을 생각하면 그 은행나무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은행나무 아래로 개울이 흘렀는데 지금도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풍경이 떠오릅니다. 그 은행나무는 제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경북 청도군 이서면 칠곡리에서 태어난 박종식(46) 한나라당 인천시당 사무처장은 고향 얘기를 꺼내자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말도 점점 빨라지고 인천에 살면서 잊고 살던 사투리를 '원어민'처럼 구사하기 시작했다.
박 사무처장은 "지금도 명절 때나 벌초하러 고향을 찾는다"며 "고향에 갈 때마다 우리뿐 아니라 다음 세대로부터도 사랑받는 고향이 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어릴적 활력 넘치던 고향이 젊은 사람들이 떠나면서 점점 인적이 드문 곳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있다. 박 처장은 농촌과 도시의 균형발전에 대한 논의가 보다 진지하게 진행되길 바라고 스스로도 정치권에서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박 처장은 대학 졸업 직후인 1991년 당시 여당이었던 민자당에 들어갔다. 그가 사무처 당직자로 일한 20년 동안 민자당은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두 번 옷을 갈아입었고 여당에서 야당이 됐다가 다시 여당으로 돌아왔다.
박 처장은 "사회참여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당시 한나라당 사무처는 젊은이들에게 인기있던 직장이었다"며 "하지만 야당 시절 10년을 겪으면서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앙당 후원회에서 잔뼈가 굵은 박 처장은 2006년 새로운 둥지를 찾아야 했다. 정치자금법 개정에 따라 중앙당 후원회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이때 그가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인천이었다.
그는 "대구 사람들은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면서도 이해할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양해가 되는데 인천 사람들은 좀 깐깐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면서도 "인천은 개항장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강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천시당에서 부사무처장-사무처장(1급)을 지낸 뒤 지난해 연말부터 중앙당 정책위로 자리를 옮겨 국방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약해왔다.
며칠 전인 19일 단행된 한나라당 사무처 인사에서 다시 인천시당 사무처장으로 가게 된 박 처장은 "인천과 더욱 특별한 인연을 이어갈 것 같은 좋은 느낌"이라며 "인천에서 느끼는 활력을 대구경북에서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처장의 전임 사무처장은 인천시 정무부시장을 지내고 현재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박 처장은 전임자의 길을 따르겠느냐는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박 처장은 그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음에도 불구 더 나은 미래청사진이 쏟아지고 있는 인천의 발전원동력으로 '개방성'을 꼽았다.
개항장을 중심으로 성장한 도시답게 자유롭고 출신지역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성공의 길이 열려 있는 곳이 바로 인천이라는 것이다. 박 처장은 대구경북에서 참고하고 벤치마킹할 수 있는 점이 많은 곳이 인천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여섯 살 때 경산으로 이사한 그는 학교를 초'중'고 및 대학 때까지 대구에서 지냈다. 송정초등학교, 안심중, 영남고, 영남대 국문학과, 경희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유광준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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