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짝퉁 TK', 이젠 안녕!

입력 2011-07-20 11:15:18

세한연후(歲寒然後)에 지송백지후조야(知松柏之後凋也)라 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권세만 좇는 세상의 인심을 개탄하는 게 본래의 뜻이지만 더욱 넓게 해석할 수도 있다. 큰일이나 어려움, 시련을 겪어봐야 그 사람의 능력은 물론 됨됨이까지 확연하게 알 수 있다는 말로도 뜻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대구경북에도 최근 큰일들이 닥쳐오고 지나갔다. 그와 함께 이 지역은 어려움과 시련에 다시금 봉착하게 됐다. 동남권 신공항과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 실패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지역의 미래를 담보할 것으로 잔뜩 기대를 걸었던 신공항과 과학비즈니스벨트가 결국 물거품이 되면서 희망의 불씨가 잦아들고 말았다. 대구경북은 또다시 천길 벼랑 끝에 서게 됐다.

역설적이게도 신공항과 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 실패는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교훈'(敎訓) 하나를 안겨줬다. "지역을 이끈다는 이른바 지도자들이란 사람들이 이렇게나 무기력하고 능력이 없다는 말인가" 하는 깨달음을 갖게 한 것이다.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은 물론 자치단체장, 각 기관'단체장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도 만들어줬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대구경북을 이끈다는 리더들이 한 일이 무엇이냐"는 '무능무용론'(無能無用論)까지 들먹이는 실정이다. 소나무와 잣나무는커녕 바람에 힘없이 부러지거나 뿌리째 뽑히는 잡목(雜木)에 불과했다고나 할까.

이 같은 분위기에 따라 벌써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 기상도(氣象圖)를 점치는 이들이 많다. 대구경북을 석권해온 한나라당 위상이 흔들릴 것이다, 현역 의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낙선하거나 공천조차 받지 못할 것이라는 등 정치 지형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국회의원들과 한나라당에 대한 지역민들의 불신, 불만, 분노, 질타, 원망 등이 화산처럼 분출하고 있기에 당연한 예측들이기도 하다.

유권자들의 의견을 듣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정치의 또 다른 속성인 법. 대구경북 민심(民心) 변화를 감지한 한나라당은 "어떻게 하면 참신하고 좋은 인사들을 영입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다. 아마도 그들 나름의 인물 선택 기준에 따라 정치 신인들을 대거 영입해 총선에 내보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이들 중 상당수는 대구경북에서 태어났을 뿐 서울의 좋은 대학을 나오고 서울에서 변호사나 교수와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공무원을 비롯한 고위직을 지낸 사람 등이 차지할 것이 분명하다.

대구경북 입장에서는 소위 '무늬만 TK 인사들'에게 그동안 호되게 당했다. 이 지역에서 태어만 났을 뿐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서울에서 수십 년 동안 잘 살아오다 선거에 나선 인사들에게 표를 몰아줬다가 지역 발전에는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하는 잘못을 되풀이해온 것이다. 집은 서울에 있고 자녀들은 서울'외국에서 대학'직장에 다니는 인사들에게 대구경북의 어려움을 절절하게 느끼고 지역 발전을 위해 몸을 던지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부터라도 정치인은 물론 지역의 리더들을 선택하는 기준을 확 바꿔야 한다. 고향만 이 지역에 뒀을 뿐 집과 재산은 서울에 있고 사고방식마저 서울 중심주의적인 '짝퉁 TK 인사들'은 배척해야 한다. 그 대신 이 지역에 튼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지역의 아픔을 같이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몸을 던질 수 있는 진정한 지역의 인사들을 리더로 선택해야 한다. 대구경북의 영어 표기법도 TAEGU에서 DAEGU로, KYEONGBUK에서 GYEONGBUK로 바뀐 만큼 이제 TK는 없게 됐다. 있다면 지역과 운명을 같이하며 분골쇄신하는 'DG 인사들'이 있을 뿐이다.

안타깝게도 지역 유권자들은 스스로 표의 값어치를 망각하거나 팽개쳤다. 인물을 꼼꼼하게 살피지 않고 당만 보고 표를 던졌기에 무시당하고 홀대당했다. 유권자들이 가진 가장 큰 힘은 표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나타내고 뜻을 관철하는 것이다. 만약 한나라당은 물론 다른 정당들이 지역 민심과 배치되는 인물을 공천한다면 표로 심판하면 된다. 내년 총선은 물론 앞으로 선거에서 지역민들이 인물 선택에서 어떤 기준을 갖고 표를 행사하느냐에 따라 지역의 앞날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닫고 행동해야 할 때다.

이대현(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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