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행복편지] 民草(민초)도 偉人(위인)이 될 수 있다

입력 2011-07-19 07:43:12

제 어머니 얘기로부터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든여덟 살로 연세에 비해 건강하신 편입니다. 요리솜씨도 뛰어나시고, 전화번호도 꽤 외우시고, 일기도 매일 쓰시는 것을 보니 치매 걱정은 안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퍽 다행스럽습니다.

내세울 것 없이 평범한 어머니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꺼내는 것은 귀 따갑게 하신 말씀 세 가지가 제 삶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위를 쳐다보지 말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살아라", "나만 생각하지 말고 남을 돕고 살아라","마음을 비우고 즐겁게 살아라."아마 어머니께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오신 인생 비결인 것 같습니다.

한국현대사에 미증유의 비극과 고난을 몸소 겪으신 어머니의 인생 신조는 저에게 동서고금의 성현 말씀보다 훨씬 더 무게가 나가고, 더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저를 세상에 낳아 이승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고, 인류의 스승인 성현들을 알게 해 주신 어머니는 어떤 의미에서는 절대지존(絶對至尊)이십니다.

여기서 하나의 의문을 던져 봅니다. 성현(聖賢)이나 위인(偉人)은 범인(凡人)인 우리와 전혀 다른 차원에 사는 절대지고(絶對至高)의 인간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대표적 위인인 조선 중기 대유학자이자 정치가인 율곡 이이. 한국은행 지폐 얼굴에 한 명도 아니고 어머니 신사임당과 함께 모자 두 명이나 오르니, 반만년 역사에 한국 최고의 명문집안임이 틀림없습니다. 내로라 하는 위인이며 존경을 한몸에 받는 그이지만 동시대 인물들로부터는 폄하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이는 서인이었음에도 당쟁의 와중에 서인과 동인의 화합에 힘썼습니다. 그런데도 문신 유성룡은 동인 소속이라서 그랬겠지만 "이이가 함양한 힘이 없었기 때문에 말과 글과 행동에 경솔한 점이 많다"고 비판했습니다. 영의정을 지낸 학자 노수신은 "이이가 비록 간인은 아니지만 진실로 경솔한 사람이다. 스스로 자기 의견만을 옳다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으니 나랏일을 맡아 하게 한다면 본심은 비록 나라를 그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해도 끝내는 그르치는 데 이르렀을 것이다. 이이는 자기에게 아첨하는 것을 좋아하며, 다만 문장에 이르러서는 힘을 들이지 않고 대책문에서 속담을 섞어가며 줄줄 나와서 막힘이 없었다"고 깎아내렸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이이와 평생을 함께한 성리학의 대가인 성혼은 "침착하고 치밀한 기품이 적다"고 비난했습니다. 선조 역시 이이 생존 시에는 융성하게 대접했다가 사후 1년도 안 되어 "속일 수 없는 것은 인심이고, 막을 수 없는 것이 공론"이라며 율곡을 흉보았다고 합니다.

인류 4대 성인(聖人)으로 꼽히며, 동양사상의 아버지로 추앙을 받고 있는 유가(儒家)의 시조 공자 역시 비난의 칼날을 피하지 못 했습니다.

도가(道家) 사상의 장자는 노자 입을 빌려 "공자의 인의(仁義)가 오히려 사람들의 천성을 더 어지럽힌다"고 힐난했습니다. 중국 후한(後漢) 사상가인 왕충은 '논형'에서 "공자의 말에는 일정한 방향이 없다. 말에 방향이 없으면 행동에도 일정한 목표가 없는 것이다. 천하를 주유했는데도 쓰이지 않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공자가 칭찬하기도 했던 춘추시대 제나라 대재상 안영은 중국 역사서 사기의 '공자세기'에서 "상례(喪禮)를 지나치게 숭상하여 파산할 정도로 장사를 후하게 지내니 그런 풍속을 하도록 할 수 없으며, 여러 제후들에게 다니면서 정치를 말하고 남의 물건으로 생활하니 그런 사람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습니다" 라며 오히려 공자를 폄하했습니다.

두 분의 사례를 보니 반대파의 비난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완벽(完璧)한 인간은 없는 듯합니다.

동양의 스승 1인자 공자선생과 한국의 스승 1인자 이이 선생에 대한 험담 사례를 굳이 거론한 것은 나쁜 의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너무나 존경스런 위인이지만 우리네 보통 인간 반열로 한번 세워서 보다 친근한 스승 혹은 사표( 師表)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넉넉한 생활이 아닌데도 한두 푼을 아껴 불우 이웃을 돕는 데 정성을 아끼지 않는 민초들을 보면 그들 역시 위인 못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래서 저는 민초도 위인이 될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헌태(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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