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뷰'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어로 '이미 보았다'는 뜻의 이 말은 첫 경험인데도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경험했다고 느끼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처음 가본 곳인데도 이전에 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거나, 처음 하는 일을 전에 똑같은 일을 한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실제로 이러한 느낌이 들 때가 있고, 대부분은 꿈속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것을 '데자뷰 현상'이라고 한다. 의학에서는 '지각 장애'의 일종으로 보기도 하지만 나는 요즘 이런 데자뷰를 일부러 즐기고 있다.
일전에 동네 근처에서 막걸리를 마시는데 주인장이 내가 잘 아는 이와 친구라고 한다. 고향 친구라기에 고향이 어디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고향이 대구 중구 남산동이라고 한다. 더 정확하게는 향교 근처라고 친절하게 부연 설명을 해 준다.
겉으로 보기엔 지극히 평범한 대화였지만 그로 인해 내 마음 속은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어릴 적부터 귀에 딱지가 앉은 노랫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의 살던 고향'이라고 얘기하려면 적어도 '꽃피는 산골'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대구시 중구 남산동이 고향이라니. 그렇다면 나의 고향은? '나의 살던 고향'은 대구시 중구 삼덕동과 공평동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일하는 직장이 중구 삼덕동에 있으니 바로 고향 동네다. 그러다 보니 수시로 내가 태어난 곳과 자란 곳을 지나다니곤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견 굉장히 낭만적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실상은 어떤가. 조용하던 주택가는 불야성을 이루는 상가가 돼 식당과 주점, 옷집들이 들어섰고 예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다니던 학교들은 모두 공원과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 자취도 없다. 법원과 형무소가 동네에 있었다고 하면 후배들은 농담으로 듣는다.
그렇게 나의 살던 고향의 모습은 내 기억속에서만 있을 뿐 현실에서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랬던 것이 오래전의 일이었는데 하필이면 막걸리를 마시다가 우연한 계기로 다시금 고향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모습이 사라진 장소가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닮은 모습이라도 남아 있는 곳을 찾는다면 내 고향과 유년의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이 거기에까지 이르자 옛 모습이 꽤 남아 있는 동네들을 가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데자뷰를 가지고 싶던 내 바람은 맞아 떨어졌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처음 가본, 개발이 덜 된 동네에서 오히려 내 고향의 모습과 어린 시절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정겨운 골목길, 익숙한 대문과 담장, 이름을 부르면 어릴 적 동무가 금방이라도 뛰어나올 것만 같은 집들이 초행의 곳곳에 널려 있었다. 옛날 지도를 펼쳐놓고 다음에는 또 다른 어느 곳에서 나의 고향과 추억들을 만나게 될까 가슴 설레 본다.
정호영 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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