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장 김밥 훔친 좀도둑은 배고픈 노숙자

입력 2011-07-09 08:30:48

"6개월간 물만 먹어 배고팠어요"…검찰, 처벌 대신 밥 사줘

7일 오전 7시 대구 북부경찰서 형사과 사무실.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다리의 김모(43) 씨가 조사를 받고 있었다. 검게 탄 피부와 추레한 행색만으로도 김 씨가 노숙인임을 짐작케 했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김 씨는 지난 7일 오전 2시 50분쯤 북구 태전동 테니스장 안 냉장고에서 김밥과 과일 등을 3차례에 걸쳐 훔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테니스장 회원들 간식이 자주 사라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근을 순찰하던 테니스장 직원이 그를 발견한 것. 태전동 인근 공원에서 6개월 간 노숙 생활을 했던 김 씨는 최근 물로만 배를 채워오다가 굶주림에 지쳐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10년 전 친구를 위해 보증을 서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1억2천만 원이 넘는 빚이 저한테 넘어왔어요. 7년 동안 매년 1천만원씩 갚았는데, 직장을 그만두면서 빚이 쌓이자 채권 추심업자들이 집에 찾아와 애들과 부인을 괴롭히더군요."

10년 넘게 다녔던 직장에서 해고당한 뒤 빚 독촉에 시달렸던 그는 가족들이 고통받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김 씨는 부인과 이혼 도장을 찍은 뒤 집을 나왔다. 자신이 사라지면 가족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질 것으로 믿었다. 그렇게 시작된 노숙 생활은 1년을 훌쩍 넘겼다.

경찰은 사연을 들은 후 김 씨를 구내 식당으로 데려가 밥을 제공했다. 북부경찰서 경찰관은 "김 씨는 전과도 없고 자신의 범행을 깊이 반성하고 있어 일단 돌려보냈다"며 "돈 때문에 멀쩡한 한 집안의 가장이 노숙인이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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