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이야기] 60여년 만에 드러난 조부님 명예

입력 2011-07-08 07:00:17

'우리 가족 이야기'는 아빠나 엄마, 남편과 부인, 자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부터 가정의 가훈(家訓)이나 자랑거리, 추억이 얽힌 사진, 대대로 전해온 가보나 유품, 아이의 배냇저고리, 애완동물, 키우는 식물 등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가족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가족 간의 따뜻한 정을 나누고자 합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원고지 3~5매 내외로 작성하셔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시면 됩니다. 채택된 분에게는 롯데백화점 10만원 상품권을 드립니다.

▲보내실 곳=weekend@msnet.co.kr 또는 매일신문사 문화부 독자카페 담당자 앞

60여년 만에 드러난

조부님의 독립운동

대를 이어서 보존함은 물론이고 살면서 자부심을 가져야 할 명예로운 일이 우리 집에 찾아 든 것은 3년 전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시던 조부님의 명예가 세상 밖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그동안 숱하게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애를 썼지만 허사였는데 어느 날 보훈처로부터 유족을 찾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옴으로서 조부님의 행적을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실로 세상을 뜨신지 60여년 만이었다.

조부님은 영주 봉화 안동을 거점으로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년 6개월 간 옥고를 치르시고 출소를 하셨지만 이미 숱한 고문으로 인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이 되어 해방 다음해인 1946년 40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뜨셨다.

약관의 나이 때부터 나라의 독립을 위해 바깥생활만 하시다 보니 가정사정이 어려워 진 것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가족들은 가장의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고 당시를 회상 하시던 할머님은 하루빨리 명예를 찾고 싶어 하셨지만 생전에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신 것이 안타까웠다.

조선 세종대왕 때 문신이자 명장이던 절재(節齋) 김종서 장군의 후손임을 항상 자랑스러워하시던 시아버님은 충신 집안에 애국자가 나기 마련이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지만 조부님의 명예를 찾기 전에 돌아가셔서 가슴이 아팠다.

2008년 3월 1일 조부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어 훈장을 받으러 단상에 올라간 남편도, 지켜보던 가족들도 모두 눈시울을 붉혀야 했다.

묘지도 애국지사답게 단장이 되었고 공적비도 선산 입구에 세워져 길을 가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조부님의 행적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가슴이 뿌듯했다.

조부님의 그 고초를 생각하니 나라 사랑의 길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 한 번 더 돌아보게 되어 숙연해진다.

이영숙(영주시 휴천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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