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나으면 천사 같은 사회복지사 될래요"
소녀는 종이학을 접었다. 학 한 마리에 희망을, 학 두 마리에 꿈을 담았다. "내 병 빨리 낫게 해주세요."
아버지도 딸의 꿈에 힘을 실었다. 부녀는 매일밤 마주 앉아 학을 접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접은 종이학 1천 마리가 병에 담겼지만 수민이(16'뇌병변 1급)의 몸은 갈수록 굳어가고 있다. "만화에서 봤는데, 학 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종이학을 만지던 수민이가 고개를 숙였다.
◆"난 괴물이 아니에요"
5일 오후 대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5층. 활짝 열린 현관문 앞에 휠체어 한 대가 서 있었다. 휠체어는 수민이의 발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만 해도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볐던 수민이는 이제 휠체어 없이 움직일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수민이 할머니 김금희(77) 씨는 2003년 9월 1일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가족들은 수민이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이날 처음 알았다. 책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서던 수민이가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할머니,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곧장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를 받았고 수민이 머리에서 '뇌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이의 머리에서 종양이 발견된 날부터 고난도 함께 시작됐다.
키 152㎝, 몸무게 65㎏. 수민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작고 체중이 많이 나가는 편이다. 아버지 김시경(54) 씨는 "병에 걸리기 전에만 해도 날씬했던 수민이가 점점 몸집이 불어나고 있다"고 했다. 뇌 신경이 손상돼 온몸에 마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년 전만 해도 집 앞 공원에서 아빠와 함께 줄넘기를 했지만 이제는 화장실에 가는 것도 힘들 만큼 마비 증세가 심해졌다. 수민이는 병을 얻은 뒤 자신감을 잃었다. 일반 학교에 다녔던 아이는 지난해 특수학교로 전학갔다. 장애인을 '괴물'처럼 대하는 친구들의 따돌림과 놀림을 견디지 못해서다. 언어장애까지 겹쳐 말이 어눌한 수민이를 이해해주는 친구는 없었다.
◆아이를 짓누르는 가난
수민이 집에서 건강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폐결핵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할머니는 손녀딸 병간호를 하면서 몸이 더 상했다. 아버지 김 씨도 몸이 불편하다. 지체3급 장애인인 김 씨는 어릴 때 원인 모를 질병을 앓아 오른팔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직장을 찾아봤지만 중학교밖에 졸업 못한 장애인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수민이가 세 살 때 부인과 이혼한 뒤 할머니 김 씨가 바느질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같이 사는 수민이 고모(53)도 이혼을 한 뒤 정신이 온전치 못해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가난은 수민이네를 더 짓눌렀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인 수민이 가족은 43㎡(13평)인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몸을 맞대고 산다. 생계급여 86만원으로 생활비를 감당하기도 어려운데 수민이 병원비까지는 역부족이다. 지난 2007년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뇌수술을 받으러 갈 때 수민이 식구는 60만원을 들고 서울로 향했다. 60만원은 수민이가 어릴 때부터 받은 용돈과 세뱃돈을 모조리 털어 마련한 돈이었다. 수민이 할머니는 병원비가 400만원이 넘게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 입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손녀딸 수술비도 감당하지 못하는 가난이 미웠다. 그때 수술비는 구청에서 지원금을 받아 겨우 해결했다.
얼마전 수민이는 발작을 일으켰다. 벽에 머리를 마구 박고 칼로 제 몸에 상처를 냈다. 할머니가 말리지 않았다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수민이 머리카락을 살짝 들추자 곳곳에 수술 흉터가 드러났다. 머리를 여는 대수술을 5차례나 받았다. "사회복지사, 천사잖아요. 병이 다 나으면 나도 사회복지사가 될래요." 지독한 가난과 질병 앞에서도 아이는 꿈을 꾸고 있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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