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뭐 먹지? 김밥으로 때우고 낮잠이나 한숨…"

입력 2011-07-02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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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의 점심시간 백태…치솟는 밥값, 분식족 늘어, 까다로운 입맛 '

치솟는 물가에 음식값이 덩달아 뛰면서 식사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등으로 점심을 때우는 직장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편의점에서 만난 시민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식사 장면을 연출해줬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치솟는 물가에 음식값이 덩달아 뛰면서 식사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등으로 점심을 때우는 직장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편의점에서 만난 시민들이 사진촬영을 위해 식사 장면을 연출해줬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구내식당은 직장인들이 저렴하게 점심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최근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대구은행 본점의 경우에는 전체 직원 800명 중 400여 명이 매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구내식당은 직장인들이 저렴하게 점심식사를 해결할 수 있어 최근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대구은행 본점의 경우에는 전체 직원 800명 중 400여 명이 매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하루의 '오아시스'다. 보통 낮 12시부터 1시까지 1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맛있는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 동료들과 수다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해방의 시간이다. 그렇다 보니 오전 11시만 넘어서면 시선이 자꾸만 시계를 향한다. 11시 30분을 넘어서면 엉덩이마저 들썩거린다. "오늘은 누구와, 무엇을 먹을까?" 가장 큰 고민거리이자, 즐거운 고민을 하면서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점심시간이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치솟는 물가 속, 밥값부담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지만, 요즘은 그 '먹는' 비용이 상상을 초월하다 보니 먹는 즐거움 따위는 포기한 채 허기를 달래는 수준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직장인들도 늘고 있다.

◆치솟는 밥값에 점심시간 즐거움도 날아가

택시운전기사 박모(48) 씨는 요즘 일주일에 한두 번은 분식점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치솟는 물가에 따라 식당의 밥값이 덩달아 뛰면서 식사비 부담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그는 "2, 3년 전만 해도 4천원짜리 정식이 흔했고 밥도 푸짐했는데, 요즘은 그런 곳을 찾기가 힘들다"고 했다. 하루 12시간 이상 택시를 타봤자 사납금을 채우고 나면 남는 돈은 고작 3만~4만원. 그렇게 고생해 번 돈인데 점심, 저녁 두 끼 사먹으면 1만~1만5천원이 날아가니 자연히 손이 쪼그라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 씨는 "하루종일 좁은 공간에 갇혀있다 보니 김밥을 먹으면 소화가 잘되지 않지만, 그나마 1천원짜리 김밥이 가장 싸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메뉴"라며 "나라고 왜 따뜻한 찌개에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영업직인 최모(32) 씨는 '삼각김밥파'다. 하루종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업무 특성상 같이 식사를 할 사람도 마땅치 않고, 끼니 때마다 입맛에 맞는 식당을 찾아다니는 일도 번거롭다 보니 차라리 편의점을 택하는 것이다. 삼각김밥 2개와 우유 하나가 그의 점심식사. 최 씨는 "차 안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한 뒤 남는 시간에는 책을 보거나 낮잠을 자는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어 차라리 편하다"며 "식당에서 사먹으려면 요즘은 최소 6천원 이상은 줘야 한 끼를 해결하지만 삼각김밥은 2천500원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최근 3년간 평균 점심값은 치솟고 있다. 잡코리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의 평균 점심값은 2009년 5천193원, 2010년 5천372원, 2011년(3월 기준) 5천551원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저렴한 비용으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편의점 음식들이 인기다. 편의점업체 보광훼미리마트는 올해 상반기 '전주비빔 삼각김밥'(6위), '소불고기 도시락과 빅불고기버거'(각 12, 13위) 등 식사용 먹을거리 상품이 상위권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훼미리마트의 삼각김밥과 도시락은 판매량 순위 20위권 내에 무려 4종이나 포함됐다. 세븐일레븐 역시 올해 들어 편의점 도시락 매출이 전년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밥값이 고공행진을 하다 보니 직장 구내식당이 인기를 얻고 있다. 구내식당의 밥값은 2천500~3천원 정도로 일반 식당의 절반 에 배불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자칫 늦으면 밥솥이 비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공무원 임모(38'여) 씨는 "업무 특성상 항상 식사시간이 5~10분 정도 늦을 수밖에 없는데, 준비한 분량의 밥이 떨어져 밥을 먹지 못하는 날도 꽤 많다"며 "그런 날은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공공근로와 공익근무 요원, 복지도우미 등 급여수준이 취약한 계층이 많다 보니 가급적 이들에게 구내식당 식사를 양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점심시간이 오히려 고역?

바쁜 업무에 쫓기다 보면 잠시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기질 않는다. 사실, 전혀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있다고 해도 눈치가 보여 마음놓고 쉬질 못하는 것이 한국의 직장 풍경이다. 그렇다 보니 점심시간은 '딴짓'을 할 수 있는 나만의 자유시간.

직장인 최모(31'여) 씨가 회사 구내식당 이용을 고수하는 이유 중에는 식비가 절약된다는 장점 외에도 '나만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구내식당을 이용하게 되면 15분 남짓이면 식사를 끝낼 수 있어 마음껏 인터넷 쇼핑을 즐기기도 하고, 음악을 듣거나 수면안대를 끼고 낮잠을 즐길 수도 있는 것.

하지만 초등학교 교사들 중에는 "점심시간이 오히려 더 괴롭다"는 이들도 꽤 된다. 학교 특성상, 점심시간이 '근무시간'에 포함돼 있어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식사습관과 예절, 편식금지, 잔반 남기지 않기 등을 지도해야 하는 것이다. 중등교사들은 점심시간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 교사들은 점심시간이 근무시간에 포함되는 대신 퇴근시간을 1시간 당겨주는 것이다. 교사 권모(37) 씨는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초등학생들과 식사를 하다 보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인데다, 식사 후 잔반을 확인해 아이들에게 확인 스티커까지 나눠주다 보면 교사가 식사할 여유는 없다"고 푸념했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사들 가운데서는 점심 급식 시간이 가장 스트레스 받는 시간으로 만성 소화불량 등의 위장 장애를 호소하는 이들도 꽤 많다고 한다.

직장인 황모(39) 씨는 '점심시간 부장을 어떻게 피할까'를 고민하는 일이 가장 큰 스트레스다. 걸핏하면 "황과장, 점심 뭐 먹을까"라며 같이 식사하자고 말을 걸어오지만 부하직원인 그의 입장에서는 유일한 휴식시간인 점심시간마저 직장 상사와 함께하긴 싫기 때문이다. 황 씨는 "부장은 입맛도 나와는 전혀 딴판이라 맵고 짠 음식을 선호하는데다, 식사시간에까지 일 이야기를 끄집어내 잔소리를 하는 타입"이라며 "동료들과 편안한 식사를 즐기고 싶다"고 푸념했다. 하지만 그도 부장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직장 상사이다 보니 부장은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늘 혼자 식사를 해야하는 외톨이 신세가 되는 것. 황 씨는 "'나도 몇 년 안에 진급하면 저런 신세가 되겠구나'하는 짠한 마음이 들어 사실 외면하기도 쉽잖다"고 했다.

온라인 취업포털 인크루트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파트너 1위로 동료직원(76.6%)이 압도적이었다. 적어도 점심시간엔 자유스럽고 편한 분위기를 누리고 싶다는 의미다. 반대로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 싫은 사람으로는 직속상사(57.7%)가 꼽혔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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