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 도시의 미래, 시나리오 통해 결정하자

입력 2011-06-27 10:35:44

지난주 경기도 과천시에서는 '도시 비전 시민 토론회'라는 뜻깊은 행사가 개최되었다. 인구 7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이고 평일 오후 시간이었지만 1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하여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 토론회는 젊은 시의원들과 전문가들이 지난 몇 개월간 과천시의 미래에 대해 연구하고 논의한 결과를 발표하고 시민들의 의견을 구하는 자리였다. 제2 종합청사의 세종시 이전이 예정되어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LH공사와 과천시가 과천지식정보타운 예정 부지에 9천 가구가 넘는 보금자리 주택을 건설하기로 하면서 이 도시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자는 취지였다.

사실 한 도시의 미래의 모습은 도시기본계획을 통해 문서화되어 있다. 모든 도시들은 의무적으로 2020년을 기준으로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전문계획가나 용역기관이 연구용역의 형태로 종합계획안을 작성하여 발표하고, 주민들은 설문조사, 공청회, 자문 등을 통해 형식적으로 참여할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작성된 도시기본계획의 내용조차 보금자리사업이나 공모형 국책사업이 추진되면 금방 폐기되고 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전국 대부분의 도시기본계획에서는 미래의 비전으로 첨단도시, 과학도시, 전원도시가 빠지지 않는다. 과천시도 예외가 아니다. 2020 과천시 도시기본계획에서는 친환경도시, 문화'관광도시, 첨단'교육'지식 기반도시 등이 발전 방향으로 제시되어 있다. 지금까지 각종 계획과 연구에서 제시된 이 도시의 미래는 미래형 전원도시, 환경생태도시, 문화도시, 교육'과학'연구 중심도시, 그린테크노시티, 스마트 웰시티 등이었다. 도시의 미래는 화려한 미사여구만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희생하고 어떤 것을 수용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도시의 가용 부지와 재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환경을 보전하면서 첨단산업도 육성하고, 괜찮은 일자리와 주택을 모두 공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용 부지를 이런저런 용도로 모두 개발하고 욕망을 좇아 초고층 아파트단지로 재건축하면서도 전원도시와 생태도시를 꿈꾸는 것은 허망한 욕심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의 도시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저출산 고령화 현상, 부동산 시장의 침체,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압박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면서 종전의 발전 경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이른바 '저성장 시대'가 도래하면서 지자체와 시민들은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확대 지향적인 도시개발 구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광역시와 시'군이 2020년 도시기본계획의 목표로 설정한 인구를 합하면 6천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통계청은 저출산 고령화 현상 때문에 우리나라의 인구는 5천만 명을 넘기지 못한 채 2018년을 정점으로 줄어들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전국 대부분의 도시들은 분명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목표인구를 상정하고 있는 셈이다.

유명한 행정학자 던(W. N. Dunn)은 미래의 모습을 잠재적 미래, 개연적 미래, 규범적 미래로 구분한다. 미래에 나타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사회상태가 잠재적 미래이며, 주체가 사건들의 추세를 바꾸기 위하여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미래가 개연적인 미래이다. 반면, 규범적 미래는 정책 결정자나 주체들이 미래에 실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상태를 말한다. 우리 도시의 미래를 현재 추세를 단순히 연장하는 모습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도시를 구성하는 각 주체들이 새로운 도시의 미래모습을 구상하고 합의해야 한다. 또한 규범적 미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무엇을 포기하고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가를 합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필자는 과천시민 토론회에서 시민들이 미래의 모습을 스스로 그려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형 도시계획기법을 채택할 것을 제안했다. 이 기법은 미국 군사전략연구소인 RAND가 처음 개발한 것으로 단순히 과거추세를 연장하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와는 구조적으로 다른 미래를 창출해 가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시민참여를 통해 3∼6개의 미래 시나리오를 개발하고 시나리오를 평가해서 채택하는 방식으로 시카고시의 'GO TO 2040'에서 활용되고 있다. 시민들은 'MetroQuest'라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시나리오별 미래 모습을 지도와 도표로 작성하고 워크숍과 축제를 통해 결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사회경제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시기에 우리의 도시가 외부의 압력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도시구성원들이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는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도시가 지속가능성을 지니고 경쟁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도시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변창흠(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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